영화 <엘리멘탈>
애니메이션 장르에서의 상상력은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특히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그렇다. 단순해서 유치해 보일 때도 있지만, 단순한 현실에서 발견되는 그 은유법은 기발해서 웃음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다.
<엘리멘탈>에서의 은유들이 과연 올바른 은유들인가, 혹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은유들인가에 대한 대답은 관객들 개인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동양인을 상징하는 듯한 불의 종족들, 백인을 상징하는 듯한 물의 종족들 그리고 흑인을 상징하는 듯한 공기의 종족들. 대체 불이 동양과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물은 또 어떻고? 의문이 들만한 은유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이미지들은 꽤 흥미롭다.
‘어떤 인종을 은유했다’는 끼워맞추기식 해석이 민망하게도 영화에서 4원소 종족들의 모습은 꽤 자유분방하게 표현된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그들이 날때부터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과 그 공통점 때문에 함께 모여 산다는 것.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종족들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 종족들은 사정이 다르다. 물과 공기, 흙은 서로를 해치는 방법이 없이 꽤 잘 어울려 지내지만, 불은 다르다. 특히 물과 불은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앙숙의 관계다.
앰버의 아버지는 물은 늘 불을 끄려고 한다며 투덜거리고, 물의 종족을 경계한다. 물의 종족들 역시 불과 함께 있으면 부글부글 끓어올라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만다. 그런 사정 때문에 두 종족은 분명한 경계를 두고 각자의 마을에서 살아간다.
떨어져 살아가는 탓일까. 앰버의 가족으로 비추어 보아, 그들은 물의 종족에 대한 반발심이 심해보인다.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세상의 주류는 아마도 물의 종족인 것 같다. 모든 구조물과 건물들이 물의 종족에 맞게 세워져있다. 그 때문에 불의 종족들은 파이어타운이라는 작은 곳에 몰려서 살고 있다.
아마도 <엘리멘탈> 속 주된 배경에서 불의 종족들은 이민족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방인’. 앰버와 앰버의 가족들, 그리고 불의 종족은 엘리멘트 시티에서 이방인으로서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간다.
종족 간의 다툼과 서로를 쉽게 판단하는 편견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지만, 앰버와 웨이드의 만남은 편견에서 벗어나 숨 쉴 틈을 준다. 물의 성질을 타고난 웨이드는 눈물이 많고 감정적이지만, 불의 성질을 타고난 앰버는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고 매사에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필이면 둘이 처음에 만나게 된 계기도 앰버의 집 가게에 누수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누수 사고에 화를 참지 못하는 앰버와 앰버의 말을 듣고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웨이드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만남이 재미있다. 너무나 다른 둘이기에, 서로의 말을 듣는 듯 듣지 않는 그 모습이 유쾌해보이기도 한다.
웨이드와 앰버가 사랑에 빠지는 건 바로 그 ‘다름’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다르기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웨이드는 모든 일에 화합과 감정을 중요시하지만, 그런 면 때문에 가끔 우유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앰버는 반대로 일을 처리하는데에는 능수능란하지만, 급한 성격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달래는데에는 영 재능이 없다. 그러나 앰버와 웨이드가 함께 무언가를 할 때는 그 부족한 점들이 보완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그런 서로의 다른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감각하게 된다.
앰버와 웨이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 뿐만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에게 ‘다름’이라는 것이 꽤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백인이 물이고 아시안이 불이다, 라는 이분법적인 해석으로 내용을 따지고 드는 건 별로 좋은 관람 방식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를 위협할 정도의 서로의 다름을, 그 천성을 어떻게 함께 극복하느냐다. 앰버와 웨이드는 서로의 성질이 강해지면 상대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웨이드는 앰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물을 막아줄 수 있고, 앰버는 자신으로 인해 웨이드가 증발한다고 해도 웨이드를 다시 살려낼 수 있다.
웨이드를 울게 만들어 다시 물의 형태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앰버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