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1호의 대나무 숲

프롤로그

by 신정희 해피제이

나는 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가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었다.

지금 나는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감정과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실 그 시작은 아주 다른 곳에 있다.

나는 한때

병원이라는 공간이

가장 늦게 가야 하는 곳이라고 믿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면

버틴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 버텼다.
내과도 가 보고,

이비인후과도 가 보고,

정형외과도 가 보고,

한의원도 가 봤다.
마지막까지 가지 않았던 곳이

하나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였다.
그곳은

‘정말 마지막에 가는 병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 병원을 미루고,

또 미루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 보자.

조금만 더 괜찮아지면 되잖아.

이 정도는 다들 견디고 사는 거잖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점점 더 좁아졌다.
어느 날은 잠이 오지 않았고,

어느 날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너진다는 것을.

이 책은

그렇게 무너졌던 한 사람이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병원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람 이야기이기도 하고,

무너진 마음 이야기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 이야기다.

나는 이 책에서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조언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겪은 시간을

조용히 꺼내 놓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방법은 그다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방법을 말하기 전에

내가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5011호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