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겨울은 시간의 순례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숨을 들이쉬면 코끝이 얼얼하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그 냄새는 서늘한 감각을 넘어, 빛도 소리도 기억마저 투명해진다. 마음속 어딘가에 묵혀 있던 잔상이 서서히 깨어난다.
겨울 냄새에는 고요가 깃들어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무는 이제야 본래의 형태를 드러낸다. 땅속의 생명들도, 사람들의 어깨도 움츠러든다. 겉으로는 시들해 보이지만, 강렬한 생의 준비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겨울의 냄새는 그런 내밀한 움직임의 향이다. 아무 향도 없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깊은 농도가 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세상의 소음을 벗어나 '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아침의 겨울 냄새는 유난히 짙다. 코끝이 얼고, 머릿속이 투명하게 열린다. 그 공기 속에는 오로지 맑음과 냉기뿐이다. 그래서일까, 겨울의 아침은 생각을 명징하게, 마음을 한층 단단하게 가다듬는다. 봄의 향기는 생동감, 겨울의 냄새는 정화의 감각으로, 폐부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하루를 새로이 시작할 힘을 얻는다.
반면 저녁의 겨울 냄새는 다르다. 낮 동안 얼어붙었던 공기가 서서히 풀리고, 사람들의 숨결이 섞인다. 어딘가에서 김이 나는 국물 냄새가 흘러나온다. 추위 속에서도 삶이 식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냄새이다. 냉기 속 따뜻함, 고요 속에 퍼지는 소리,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겨울 냄새는 완성된다.
냄새는 기억의 문을 여는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겨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어린 날의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새벽의 교회 종소리, 하얀 입김 속에서 마주친 친구의 웃음, 김이 피어오르던 밥상. 그 냄새는 시간을 거슬러 나를 데려간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냄새는 변하지 않는다. 그 불변의 감각이 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겨울 냄새는 인간의 내면과 닮아 있다. 차갑고 단단한 겉면 아래에는 여전히 미세한 온기가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숨기고, 마음을 얼려가며 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이 잔잔히 피어난다. 겨울 냄새는 그런 인간의 이면을 닮았다. 차가움으로 감싸야만 비로소 드러나는 따뜻함, 침묵을 견뎌야만 들리는 속삭임처럼.
나에게 겨울 냄새는 시간의 순례다. 해마다 이 계절이 돌아올 때면, 문을 열고 냄새를 들이마신다. 코끝에서 시작된 냄새는 묵은 생각을 비우고 새 공간을 만든다. 그 순간의 청량감은 오래 남아, 내 안의 시간을 다시 세우고, 생생히 살아 있게 한다. 세상이 얼어붙을수록 그 속에서 더 분명히 살아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