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사냥 1
한편, 북쪽의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은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먹지 못해 몹시 수척해졌다. 한때 당당한 산주였던 그의 위엄은 세월의 무게를 피해 갈 수 없는 듯 급격히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결국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간 늙은 수컷 흰 눈썹이 마당에 묶여 있던 개 한 마리를 손쉽게 잡아먹었다. 긴 시간 동안 나름의 약속처럼 지켜오던 ‘마을에 내려가지 않기’를 꽤 고심했으나, 처음 마음먹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한 번 내려간 후로는 어떤 망설임 하나 없이 마을로 내려가 잡아먹는 것에 탐닉했다.
늙은 수컷 흰 눈썹의 수척해졌던 얼굴에 살이 붙기 시작하던 그즈음이었다. 남쪽의 젊은 수컷 영물은 마을에서 밤새 들리는 개 짖는 소리와 피 냄새에 며칠을 탐색만 하다가,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슬쩍 마을에 내려갔다. 마을에는 더 이상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집마당에는 잡아먹을 만한 개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유, 뭔 놈의 바람이 이리도 추운 거야. 밤은 또 왜 이리 어두운지 원, 무서워서 오줌 싸러 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네.”
방에서 나오던 새댁은 영물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오줌을 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젊은 수컷 영물은 마당에서 닫힌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루 위로 성큼 올라가 방문 고리를 물어 열고는 방 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갔다.
10_사냥 2
“새아기야!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안 일어나고 뭐 하는 게냐?”
아침 늦게까지 밥상을 차리지 않는 새 며느리를 깨우러, 화가 난 시어머니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며느리의 잘린 머리와 방에 뿌려진 피를 보고 시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호랑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집 마당까지 들어와 개의 씨를 말리더니, 이번에는 방 안에까지 감히 들어오다니! 이놈을 잡아 죽여야 합니다!”
“산주로 대접했더니 북쪽의 미쳐버린 노호(老虎)와 남쪽의 겁대가리 없는 영물을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대한 게 분명하네. 그동안의 약속은 깨졌다! 이번 기회에 두 마리 모두 반드시 죽여야 한다!”
사냥 나간 마을 사내들이 돌아와 갓 시집온 새댁이 죽은 것을 알게 되자, 분노에 차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마을에 남은 이들 중 왕년에 사냥꾼이었던 노인들은 활을 다시 챙겼고, 대나무로 만든 창을 다시 들어 마을을 지키고자 나섰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집에 어린아이부터 남은 사람 모두를 모아 지키기 위한 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드디어 옆 마을에서 도와주러 온 사내들까지 포함하여 두 무리로 나누어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 한 무리는 북쪽으로, 다른 한 무리는 남쪽으로 출발했다. 호랑이 사냥에 나선 두 무리는 옆 마을에서 빌려온 사냥개 십여 마리를 나누어, 북쪽과 남쪽 산을 낮이고 밤이고 이 잡듯이 뒤졌으나, 냄새가 중간중간 끊어져 추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들 조용히 시키게. 가까이 있는 것 같네.”
보름달이 높게 뜬 밤. 북쪽을 뒤지던 사내들은 호랑이 냄새를 맡은 사냥개를 따라,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나아가고 있었다. 놓칠세라 간간이 들려오는 호랑이 소리에 금방이라도 사냥이 시작될 것 같은 긴박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컹컹! 컹컹! 컹컹!”
비슷한 시간에 남쪽을 뒤지던 사내들 또한 호랑이 냄새에 자극받은 사냥개들이 흥분하자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활에 화살을 메겼다.
한편, 늙은 수컷 흰 눈썹은 수시로 고개를 뒤로 돌려 개 짖는 소리와 냄새를 맡으며 어딘가로 나아갔다. 소나무에 찔끔찔끔 오줌을 누며 일부러 흔적을 남겼고, 도망친다고 보기에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간혹 바위에 뛰어올라 귀 기울여 소리에 집중하곤 했다. 비록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개를 잡아먹으면서 부쩍 예전 힘이 되살아난 모습이었다.
“멍! 멍! 멍! 멍멍! 멍!”
냄새를 맡은 사냥개 한 마리가 먼저 수풀을 헤치고 뛰어들었다. 달려오는 것을 알고 있던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은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하여 코앞까지 와서야 호랑이를 발견한 사냥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목이 꺾여 죽었다. 흰 눈썹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죽인 개를 입에 물고 다니면서 틈틈이 살점을 뜯어먹었다.
“멍멍! 멍멍! 멍멍멍!”
죽은 사냥개의 피 냄새에 흥분한 사냥개들이 맹렬하게 짖으며 달려들었다.
“빨리빨리! 이쪽이다!”
가까이에 호랑이가 있음을 안 사냥꾼이 모두를 다급하게 불렀다.
사냥꾼들의 다급하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와 떠드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엎드려서 느긋하게 개를 뜯어먹던 흰 눈썹이 먹는 걸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11_사냥 3
젊은 수컷 영물은 전혀 도망치는 것 같지 않게 사냥개가 코앞까지 다가오면 펄쩍 뛰어 따돌렸다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 후 따돌리는 식으로, 사냥꾼과 사냥개 모두를 갖고 놀았다.
“이봐, 아무래도 자꾸 빙빙 도는 것 같지 않아.”
횃불을 든 한 사내는 호랑이 발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며 이상한 점을 찾았다.
“그러게나 말일세. 허허, 이놈이 영물이어서 그런지 우리를 갖고 노는 것 같네. 그려.”
“잠시 쫓는 걸 멈추고 모두 이리로 모이게.”
나이 지긋한 사냥꾼이 멈춰 세우고는 한자리에 모두 불러 모았다.
“이놈이 빙글빙글 돌며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으니, 우리는 넓게 퍼져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네.”
“양쪽 끝이 벌어진 꺾쇠처럼 포진하여, 양 끝이 먼저 앞서가고 가운데가 뒤따라가면서 한가운데 가둬 잡도록 하세. 사냥개는 양쪽 사내만 데리고 가서 몰아주게. 가운데로 몰린 호랑이를 이번에는 반드시 죽이세.”
대장이 호랑이를 몰아세울 방법을 설명한 후 자리를 배치했다.
12_사냥 4
“멍… 멍멍… 멍….”
“어흥… 어… 흥….”
“멍… 멍… 멍멍… 멍멍….”
아침 일찍부터 북쪽과 남쪽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는 늙은 수컷과 젊은 수컷 호랑이 소리, 그리고 사냥꾼과 개 짖는 소리로 인해 어미 갓난이와 새끼 호랑이는 내내 불안에 떨었다. 특히 어미 갓난이는 안절부절못하여 왔다 갔다가 하며 몹시 불안해했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새끼들을 데리고 더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쳐다보는 젊은 수컷 호랑이 영물과 마주쳤다. 숲에 가려져 새까만 그림자만 보이는 와중에도 섬뜩한 눈빛에 소름 끼친 어미 갓난이가 다른 길로 돌아가려 하자, 숲에서 나온 수컷 영물이 길을 가로막아 섰다. 새끼 셋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려 했으나, 어미 갓난이가 제지하면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 어미 갓난이는 젊은 수컷 영물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불안하게 느끼면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북쪽의 낯선 숲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멍멍! 멍멍! 멍! 멍멍! 멍멍멍!”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언제 쫓아왔는지, 사냥개의 짖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어미 갓난이는 방향을 다시 바꿔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달렸으나,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앞에서 들리고 있었다. 또다시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 한 명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으악! 호… 호랑이다!”
앞의 수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호랑이에 놀란 사냥꾼이 비명을 내질렀다.
놀란 것은 어미 갓난이와 새끼들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에서는 사냥개 짖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고, 밑에서는 사냥꾼의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사냥개 짖는 소리까지 덩달아 들리면서 사지로 내몰리는 것만 같았다. 앞에 뛰어오를 수 없는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암컷 갓난이는 비로소 자신이 사지에 몰린 이유를 깨달았다. 바위 위에서 늙은 수컷 흰 눈썹이 침을 흘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냥꾼과 사냥개들이 바위 가까이 모여들면서 어미 갓난이는 당황하여 빙글빙글 돌며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맸다.
이때 수풀에 숨어 있던 젊은 수컷 영물이 새끼 호랑이 뒤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정신없던 어미 갓난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뒤돌아 일부러 등을 보이더니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는 듯했다.
“커흥! 커흥! 커흥!”
젊은 수컷 호랑이 영물은 암컷 호랑이 갓난이를 한참 뚫어져라 노려본 후, 크게 포효했다.
호랑이 소리에 사냥개들은 움찔하여 움츠러드는 듯했다. 그중에 대장 역할을 하던 개가 으르렁거리자, 그때야 비로소 사냥개들이 흥분하여 짖어대기 시작했다.
바위 가까이 다가온 개들의 짖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순간, 젊은 수컷 영물은 암컷 갓난이의 머리 위로 펄쩍 뛰어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3_사냥 5
“모두 준비해라! 호랑이다!”
어미 갓난이는 새끼들과 함께 젊은 수컷 영물이 사라진 방향으로 도망쳤으나, 어느새 사냥꾼 둘이 창을 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형제간에 놀이로 싸움은 했지만, 목숨을 건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가장 큰 새끼 호랑이가 무턱대고 사냥꾼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창에 찔리고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른 새끼 호랑이가 그 모습에 흥분하여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으나, 정면에서 날아온 화살이 이마에 정확히 꽂히면서 단번에 죽었다. 남은 새끼 한 마리는 어미 갓난이 뒤로 숨었으나, 사냥개 십여 마리가 어미 갓난이와 새끼를 동시에 덮쳤다.
“멍…! 멍멍! 멍멍멍! 멍멍멍! 멍멍! 멍멍… 멍! 멍멍…!”
“어흥… 어흥… 어흥! 어흥…!”
사냥개와 호랑이의 짖는 소리로 인해 사냥꾼도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창을 꼬나들고 활을 언제든지 쏠 준비를 한 상태로 대치하게 되었다.
세 마리 새끼의 어미였던 갓난이는 사냥개 두 마리를 간신히 물어 죽였으나, 새끼는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사냥개의 공격에 지쳐 쓰러졌다. 사냥개 두 마리가 새끼에게 달려드는 걸 어미 갓난이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사냥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여든 여섯 마리의 사냥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자 결국 새끼를 내버려 둔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어미 갓난이가 둘러싸고 있던 사냥꾼 사이로 뛰어들자, 당황한 사냥꾼 무리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갓난이는 빠져나갔으나, 화살을 맞고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쓰러진 채 죽어가는 새끼를 슬프게 잠시 바라보던 어미 갓난이가 일어나, 절뚝이는 불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사냥꾼들은 암컷 호랑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더 이상 좇지 않았다. 암컷 호랑이가 사라지고 잠시 뒤 사냥꾼 모두가 새끼 호랑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내 불쌍한 아내를 죽인 이 원한으로 네년의 새끼 모두를 내가! 내가 죽인다! 보고 있나? 보고 있냐고?”
절뚝이며 도망칠 암컷 갓난이를 향해,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아내의 남편이 고함을 고래고래 소리 높여 질렀다. 그는 대나무 창으로 미세하게 숨이 붙어 있던 새끼 호랑이를 찌르고 또 찔렀다. 그 어린것의 숨이 얼마나 버티고 있었겠는가. 찌르는 대로 머리와 몸은 처진 상태로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남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다른 새끼 호랑이까지 계속 찔러댔다. 옆에서 지켜보던 젊은 총각이 그를 안아주었다. 그는 그보다 젊은 사내의 가슴에 안긴 채 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 그제야 그의 손에서 죽창이 떨어졌다.
14_갓난이, 사냥 6
마을은 새끼 호랑이 세 마리를 죽인 후로 별다른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여러 달이 흘러 겨울이 막 찾아오려던 한적하면서도 쓸쓸한 밤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마을 사내들이 그해의 마지막 사냥을 나간 날, 밤부터 함박눈이 무릎까지 마을에 수북이 쌓였다.
사박사박.
발소리는 귀 기울여야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조심스럽게 났다. 세상은 온통 어두워 눈 내리는 소리에 발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암컷 호랑이 갓난이는 눈을 밟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젖내가 밖까지 나는 냄새를 따라 한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방문 고리를 살짝 당겼음에도 방문은 너무 쉽사리 열렸다.
갓난이는 잠들어 있던 세 아이 중 둘을 물어 죽인 후, 남은 한 아이를 문 채 방에서 나섰다. 세 마리 새끼를 잃었던 ‘어미의 숫자’를 맞추듯. 밤에 몸도 묻히고 발소리도 묻힌 채 조용히 어둠의 눈 속으로 사라졌다. 세 마리 새끼 호랑이의 어미였던 갓난이는 그렇게 잔혹한 복수를 행했던 것이었다. 아이와 함께 자던 엄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아이가 죽는소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갓난이의 처절한 복수는 그렇게 성공했다.
15_사냥의 발자국
아침이 되어서도 호랑이의 발자국은 눈에 감춰지지 않고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발자국은 북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가, 내 아가, 사랑하는 내 아가… 어디 있지?”
아이 엄마는 실성하여 온종일 마을 이곳저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호랑이가 두려워 낮에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네가 내 손주를 죽였으면, 모든 게 다 된 거냐? 이년아, 이년아… 내 손주는 무슨 죄라고. 나는 이대로 안 죽는다…”
호랑이한테 손주 셋을 잃은 할머니는 발자국이 사라질 새라 자신의 발자국을 그 위에 내며 따라갔다. 말리는 이 하나 없었고, 말린다고 억울함을 버릴 할머니도 아니었다. 숲 안까지 북쪽으로 한참을 따라가다 어두워질 즈음 발자국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어허 큰일이 나고 말았군. 수컷 호랑이가 저지른 일에 우리가 그만 흥분하여 죄 없는 암컷 호랑이 새끼에게 화풀이했으니, 분명 어미가 복수를 하는 게지.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쯧쯧쯧… 그 업보를 누가 감당할꼬.”
하지만 소식을 듣고 사냥에서 급히 돌아온 사내들이 지체하지 않고 온 다음 날, 북쪽으로 암컷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 사냥에 나섰다. 제일 앞에 할머니가 자신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길을 인도했다.
북쪽을 영역으로 하던 늙은 수컷 흰 눈썹은 마을에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몸이 몰라보게 야위어졌다. 움직일 힘을 아끼려고 동굴에 엎드린 채 마냥 쉬고 있었다. 깊은 밤중에 산을 서너 개 넘어가서 다른 마을의 개를 사냥하려면 최대한 힘을 아껴야만 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인해 사냥을 가지 못하고 하루 더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암컷 갓난이는 눈에 파인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냥꾼 무리가 멀리서 보이자, 새로운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사박사박.
그녀는 인내심 있게 자신이 설계한 ‘살’에 휘말린 인간들을 데리고서 북쪽으로 향했다.
“발자국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으니, 모두 단단히 준비하게.”
수북이 쌓인 눈 위에는 얼마 전 지나간 것으로 보이는 암컷 호랑이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어흥… 어흥… 어흥….”
가까운 곳에서 사냥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암컷 갓난이는 동굴로 천천히 다가가 낮게 울음소리를 냈다. 동굴 안에서 늙은 수컷 흰 눈썹이 나왔다. 암컷 갓난이가 수풀 사이로 잽싸게 숨어들자마자 동굴 앞에 사냥꾼이 막 도착했다.
“호랑이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쏴라! 활을 쏴라!”
늙은 수컷 흰 눈썹은 싸우거나 도망칠 기력조차 잃은 듯, 쉽사리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땅의 오랜 산주였던 흰 눈썹의 몰락은 허망하고도 비참했다. 수십 개의 화살이 꽂히기 전에, 첫 화살에 맞은 늙은 수컷 호랑이는 선 상태로 죽었으나, 다른 화살이 꽂히기 시작하자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산주로 대접받던 흰 눈썹은 마지막 가는 길이 전혀 곱지 않았다. 가장 나이 많은 촌장은 다른 사냥꾼을 제지한 후, 주술을 외듯 호랑이에게 다가가 대나무 창을 그의 심장과 입안에 서너 번 찌르고 찔렀다. 산주였던 흰 눈썹의 몸에 마을 사람들의 죄와 두려움이 맺혔다.
“훠이, 재수 없는 것은 나에게 붙어라!”
“훠이, 네가 한 죄는 이걸로 보낸다!”
“훠이, 훠이! 가거라! 네 길로 가거라!”
그는 마을 사람들 숫자만큼 찔렀다.
그 숫자만큼 주문을 외었다.
“여보게.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나, 지금은 집에서 가족을 지키는 게 좋겠네.”
사냥을 진두지휘하던 촌장이 모두에게 말하고는 급히 가족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암컷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온 곳에서 하땅의 오랜 산주였던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을 죽였다는 사실에 다들 두려워했다.
촌장은 우려했던 암컷 호랑이의 복수에 전율이 일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 마지않았다. 늙은 수컷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마을로 돌아온 젊은 사내들도 더 이상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