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사람
올해의 브런치북은 '포켓몬고' 너로 정했다
2년 전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외대부고에서 설명회를 하러 온 적이 있다. 3학년 선배들이 가장 가고 싶은 학교 1위여서 설명회 요청을 했다고 한다. 많은 중학생들이 너무나 가고 싶어 하고, 부모 역시 자녀가 갔으면 바라는 꿈의 학교. 외대부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게임을 해도 괜찮다. TV를 봐도 괜찮다. 단, 하는 것에만,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라는, 그런 학생을 기다린다는 학교. 세상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세상의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고 대응하는 학교라고 느껴졌다. 내가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외대부고에 가고 싶을 정도로...
외대부고형 인재라... 나는 생산적인 사람이었나?
나도 게임을 한다. 미국 나이언틱이 내놓은 실시간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고다. 2016년 7월 6일 미국에 첫 출시가 되었고, 한국은 6개월 뒤인 2017년 1월 24일에 정식 출시가 되었다. 포켓몬고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과 재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빠져 살고 있다.
초반 몇 년간은 포켓몬고를 너무 좋아해서, 너무 사랑해서 나이언틱의 직원이 되고 싶었다. 다른 유저들은 유튜브든, 트위터든, 블로그든 각종 플랫폼에서 그들만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을 때 난 그냥 게임을 열심히만 했다. 생산적인 활동,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이 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성 고객인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바람인가. 나에게는 되면 좋은 거고, 안 돼도 상관없는 간절하지 않은 한낱 꿈이었을 뿐이었다. 반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한 유저는 많고 적음을 떠나서 수익을 얻기도 하고 나이언틱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이라는 대회가 있다. 포켓몬스터 관련 게임들의 최강자를 겨루는 전 세계 배틀 대회다. 한국선수가 우승을 한 경우는 현재까지는 2014년 포켓몬 비디오 게임 우승자인 박세준 선수가 유일하다.
출시된 지 3년이 지나서야 포켓몬고에도 「고배틀리그」라는 전 세계 유저와 실시간 배틀을 하는 기능이 생겼다. 덕분에 2022년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에 포켓몬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됐다. 한국 대표가 되어 전 세계 유저를 만나는 일, 생각만으로 너무 멋진 일이다. 게임을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생산적인 결과물이 있을까. 이번만큼은 수동적인 아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를 뽑는 예선 일정에 갑작스러운 집안 중대사가 겹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처음 일 때가 비벼볼 기회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실력은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하향곡선이고, 다른 유저의 실력은 저 멀리 앞서 가고 있다. 해가 더해질수록 나의 나이도 많아지고, 그만큼 나의 머리와 순발력이 퇴화하고 있다. 이렇게 또 나는 생산적인 사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나의 관심 밖이어서 몰랐을 뿐이었다. 우연히 지인 소개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으나, 전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없는 나는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사실 내가 가장 쓰고 싶은 소재는 포켓몬고였다. 이런 걸 써도 되나? 뭐 이런 걸 다 쓰나? 고민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어떤 걸 써야 할까? 어떤 걸 담아야 하지? AR사진과 함께 여행기를 쓸까? 이런 생각, 저런 구상 끝에 결론은 또 '나'다. 포켓몬고를 즐기는 8년 차 유저의 이야기.
게임을 해도 괜찮다. 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자. 나이언틱 직원은 되지 못했지만, 한국 대표는 되지 못했지만, 한 권의 브런치북은 완성하자.
올해의 브런치북은 '포켓몬고' 너로 정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가 되는 과정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