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적당한 거리
일 년 전쯤, 시댁 식구들과 처음으로 스키장에 갔을 때였다. 시아버지께서 내게 갑자기 팔짱을 끼시며 살갑게 구셨다. 시아버지와 포옹은 해도 팔짱을 낀 적은 없기에 무슨 일인가 했다.
“우리랑 같이 살지 그래? 렌트비도 아끼고~ 2년만이라도 같이 살자. 너희가 이사 나가면 동생들이 또 2년씩 같이 살면 되지,” 말씀하셨다. 이유는 여쭤보지 않았지만, 시아버지께서 외로우시고 자식들이 없는 집에서 노후생활을 하는 게 걱정되시나 보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종종 어떻게 늙을지를 생각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제안 때문은 아니지만,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동안 시부모님 댁에 잠시 머무르게 됐다. 같이 사는 게 생각보다 괜찮으면 한동안 같이 사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시아버님의 희망사항도 들어드릴 겸 말이다.
우선 확실한 건 한국에서 드라마로 보아온 시댁살이와는 차이가 크다. 큰 집인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작은엄마께서 하시던 집안일을 생각해 보면, 나는 내 멋대로 무지 편하게 살고 있다. 그만큼 시부모님께서 나의 방식을 존중해 주신다. 이삿짐이 널브러진 구석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넓고 깨끗한 식탁이 있는데 왜 거기에 있냐고 시아버지께서 물어보셨다. 이곳이 좋다고 하고 하니, 그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네가 좋으면 되었다며 받아주셨다. 시어머니께서 계속 요리를 해주시니 죄송해서 한 번은 남편과 내가 요리를 하는데, 시아버지께서 불편한 자리에서 설거지를 다 해주시는 거다. 고맙다고 하니, 식구들이 같이 하는 거니까 고마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둘이 살 때는 조용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면, 시댁에서는 종종 정겹고 따뜻한 저녁을 보낸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남편이 귀여워 시부모님과 셋이 돌아가면서 남편 뒤통수를 쓰다듬으니, 남편은 자기는 이걸 허락한 적 없다고 말해 깔깔대는 소소한 순간도 있었다.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행복을 느낀다.
같이 살지 않을 때는 몰랐던 면도 알게 된다. 시부모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고, 언제 저녁을 드시고, 얼마나 자주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시는지, 평소에는 어떤 기분과 자세로 살아가시는지 같은 것들이다. 특히, 두 분의 체력과 책임감, 행동력에 감탄하고 있다. 만 67세인 시아버지는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 일을 나가셨다가 오후 네시 즈음 들어오신다. 매일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며 돌아오셔서, 콧노래가 들린다 하면 시아버지구나 알 수 있다. 곧이어 식탁 의자를 들어 옮기시고는 청소기를 돌리시고, 마당의 나뭇잎도 쓸어 버리시고, 월요일마다 2층 집 모든 방의 쓰레기를 모아 집 앞에 내놓으신다. 어머님도 다르지 않다. 역시나 일을 하시는데, 혼자 다섯 명을 위한 장을 보시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모두를 위한 요리를 뚝딱 해내신다. 심지어는 대학원에 다니는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드시고 주말에 챙겨 보내신다.
이런 자세로 자식 네 명을 키우셨을 시부모님의 모습에서 묵묵히 혼자 세 자식을 키운 우리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친구, 가족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남편의 모습도 보인다. 직장인의 삶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싫증이 난 나이지만, 남편은 성실함(diligence)이 나를 설명한다고 하니, 나도 이 분들의 모습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으신 분들이라는 건 처음부터 느꼈지만, 시부모님에게는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나이대, 관심사, 가치관이 다르고 함께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을 선택했지 시부모님을 선택한 건 아니며, 평생을 함께 살아온 직계가족과는 다르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분들의 일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익숙함과 친근감이 든다. 3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2주 동안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가까이서 자주 보는 게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한다. 함께 생활하며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았고 밥을 같이 먹은 적도 별로 없다. 그저 멀리서 관찰하고 아침, 저녁으로 ‘굿모닝, 굿이브닝'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시댁과 더 오래 살기로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다. 시부모님과 살아갈 때의 장점을 의외로 많이 발견했지만, 우리는 결국 다음 주에 이사를 가기로 했다.
타인의 집에 살고 있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수다를 한 시간 넘게 떨고 있으면,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는 칭찬을 한다. 하지만 이 소리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고, 양해를 구하기도 껄끄럽다. 삶의 방식에서도 집주인인 시부모님을 잘 보고 따라 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얘기하신 적은 없지만, 얹혀사는 사람으로서 그 도리를 느낀다. 가령, 내가 커튼을 닫았는데, 시아버님께서 다시 커튼을 여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떻게 그 방식이 다른지 관찰하고 다음에는 따라 해서 시아버님의 수고를 더는 식이다.
내가 선택한 남편과, 나 자신조차도 단점 대신에 장점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더 가까워지면 이 분들의 단점도 더 보게 될 것이고, 이것도 사랑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연세가 있으시고 가치관이 확고하신 만큼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더 포용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그런 넓은 마음을 갖추지 못했다. 감사함은 크지만, 단점까지도 사랑할 만큼 이 분들을 향한 사랑이 자라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즐기고, 내가 선택한 친구들의 단점까지 보듬어 주고 싶다.
시부모님은 아쉬워하시지만, 이렇게 2주 간의 시댁살이를 마무리하려 한다.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 같은 가족 구성원들을 제외하면, 가족은 내게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에 가깝다. 이들에게는 적당한 거리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가장 적절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