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뉘 Mar 15. 2024

글 쓸 이유

한동안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100일간 매주 한 편씩 글 발행하기 프로젝트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끔 내 글을 6,000명 이상이 읽었다는 알람을 보면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설렘도 잠시 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고 글을 쓴다고 해서 수익이라든지, 책 발행이라든지 결과물이 바로 나오지 않으니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 대신 돈을 가져다주는 프리랜스 사진 일, 남편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며 웃고 기쁨을 느끼기, 그룹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기타 연습하기, 커리어 전환을 위해 새로운 분야에서 실력을 쌓는 게 우선이 되었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늘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러다 종종 내 주위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임신을 했거나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가 그렇다. 떠오르는 대로 생각만 해도 최근 몇 달 내에 아홉 명의 소식을 들었다. 어떤 친구는 첫 아이고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는 셋째를 출산했다. 아빠와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해도 거의 매번 우리는 아이를 언제 가질 생각인지 질문을 받는다. 아빠는 평생 살면서 나에게 뭔가를 요구한 적이 없는데 아이만큼은 강력 추천을 하신다. 

그렇게 주위를 돌아보면 나와 같은 지점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게 돋보인다. 같이 저널리즘 대학원을 다니며 기자의 길을 걷던 룸메이트는 직장을 그만두고 스티커 장사를 하고 있다. 수익은 크지 않아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귀여운 애완동물 스티커로 누군가가 행복해한다며 전보다 훨씬 만족해하고 있다. 아케이디아 국립공원에서 친해진 친구는 벌써 셋째 아이를 갖고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도 그들만의 고민이 있겠지만, 옆에서 보면 자신의 선택으로 그들만의 행복을 누리는 것 같다. 

그들이 그랬듯 나도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남편은 거의 언제나 내 선택을 따르고 지지해 주기에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내 몫이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조언해 줄 수도 없고, 조언한다고 해서 따를 수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내 하루하루를 결정지을 선택들이다. 선택지도 다양하고,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도 크다. 대학원에 간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 - 그동안 벌 수 있는 돈, 쌓을 수 있는 커뮤니티, 임신 시도 - 이 커 보인다. 과거에는 그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각오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회비용이 커진 만큼 내가 지금 선택하는 가치가 미래의 나에게도 중요한 가치일지를 예측해야만 한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알아야 할 때 글쓰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타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내 생각을 명확히 하고, 거슬러 올라가 생각의 근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최고의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글쓰기 자체가 내 가치를 지켜나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친해지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주관, 가치가 뚜렷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늘 나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왔다. 어려서부터 질문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했으나, 결정을 내릴 때만큼은 내 목소리에 가장 귀 기울이고 싶다. 글을 쓰며 그 훈련을 할 때 생각, 자립, 가치관, 언어를 내가 얼마나 중시하는지 느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악기를 잘 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