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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뉘 Apr 04. 2024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가

9년간의 관계 후 던지는 질문

30대 초반. 사는 모습이 다양해진다. 친한 친구들 반 이상이 결혼을 했고, 어떤 이들은 아이를 낳았고, 몇몇은 배우자와 둘이 살겠다고 확신한다. 한편, 처절하게 이혼을 진행 중인 커플도 있다. 


넷이서 커플로 자전거 여행을 가기도 하고, 친구 커플 집에서 유치한 옷을 입고 할로윈 파티를 하고, 남편과 내가 결혼할 때 커플로 참석하고 친구는 잘 살라고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미 친구를 생각하면 친구의 남편이 함께 생각나는데, 그 남편은 이제 우리와 거의 남이 되었다. 영화 '결혼이야기'에서 처럼, 처음에는 좋게 합의 이혼을 하려다 잘 풀리지 않아 변호사도 고용할 지경이다.


이제는 혼자 남은 친구 집에 놀러 가니 더욱더 관계의 끝과 그 허전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칵테일을 한 잔 하며 수다로 공백을 채웠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문득 물었다. “너는 왜 지금 남편과 결혼했어?” 조금 멍해졌다. 남편과 나는 잠에 들기 직전 꼭 사랑한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곧 이제 진짜 자자는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도 종종 다시 할 말이 생각나고, 결국 여러 번 I love you를 말하고 잠들기 십상이다9년 전 처음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오늘이 그날이라며 다짐하고 고이 전달했던 말이 지금은 습관, 때로는 의무가 되었다. 익숙해져서 왜 사랑하는지, 정말 그대를 사랑하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그러게, 왜 그랬지?


친구와 헤어진 후 며칠간은 남편을 향한 내 태도, 감정을 살피며 그 답을 찾았다. 그러다 불안해졌다. 진짜 사랑하는지,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먼저 보였다. 


무엇보다 둘이 하는 대화가 재미가 없었다. 거의 매일, 퇴근 후 남편은 직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일상이 그렇듯, 힘든 이야기는 늘 비슷했다. 애써 관심을 갖고 듣다가 조금 더 흥미로운 대화를 하고 싶어 새로운 화젯거리를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그대로라 신선함이 부족했다. 둘이 데이트를 하는데 심심해져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나, 남편이 말을 시작하면 다른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태도를 고치고 뭐가 문제인지 추리를 하다가, 이는 누구와 결혼해도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상대의 반응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잘 이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면 할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매일 만나면 할 말이 줄어들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예측할 수 있는 상태는 결혼생활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매번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면 작은 결정을 내릴 때도 여러 번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느린 변화 

그렇지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심도 있고 영감을 주는 대화는 내게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이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진 않았지만, 남편에게 대화가 재미 없어졌고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다. 남편은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디오북으로라도 책을 접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재미있어할 만한 책을 찾아 읽고 소개하며 남편이 흥미를 갖게 도와주고 있다. 


심리학 책 "Friends: Understanding the Power of our Most Important Relationships"는 공통사가 많을수록 친한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같은 언어, 학교, 유머 코드, 취미로 시작해 그 어떤 면에서든 말이다. 같은 게 많을수록 이야기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극히 공감하며 남편과 내가 무엇을 공유하는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혼자 생각할 때는 뻔한 사항을 들여다보아서 차이점이 두드러졌다. 우리는 모국어도 다르고, 출신 나라와 학교도 다르고, 남편은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요즘 음악에 빠져있다. 그러나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니 덜 뻔한 부분에서 우리는 꽤나 비슷했다. 가족력 때문에 건강하게 먹고사는 데 진심이라는 점, 형제가 많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새로운 것을 거리낌 없이 시도하려 한다는 점, 커리어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점, 친한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점, 깨끗하게 사는 편이라는 점, 가끔은 엉뚱하다(dorky)는 점 등 삶의 태도에서 비슷했다. 결혼했으니 그냥 산다기보다는, 왜 서로가 서로를 택했는지 질문하고 되새기는 과정은 남편이 내게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 주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데 그 시간도 우리의 결혼 관계를 돌아보고 감사하게 도와주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매일 붙어 있을 때는 서로의 존재를 너무 당연시했고, 장거리 연애 시기에는 상대와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웠다면, 잠시 떨어져 있다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그 균형을 찾아준다. 이틀 떨어져 있으면 다시 남편이 보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게 생긴다. 남편이 없을 때는 잠을 설치고, 남편이 옆에 누워있을 때는 푹 자는 자신을 보며 서로의 존재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다. 


추가로, 주중에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의심이 꼭 관계의 불안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중에 일을 마치고 나서는 우리 둘 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 극 외향형인 남편은 나와 시간을 보내며 충전을 하려 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는 문을 닫고 음악의 세계에 빠진다. 하지만 주말에 함께 친구들을 만나거나 산행을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애정 넘치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주중에 배우자가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 시간이 부족한 상태인 건 아닌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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