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면 잠을 잔다. 밤이 오면 눈을 뜬다. 하늘이 어둡고 탁해지면 그제야 움직일 기운을 얻어 이불을 정돈하고 책상 앞에 앉아 뭐라도 끄적인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이번에야말로 다 읽겠다 다짐한 책을 펼쳐 몇 장 넘기다 덮는다.
그리고 다시, 이불 밑으로 들어간다. 심심하나 지루하지 않은 일상.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 방.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함이 내 몸을 품는다. 세상 두려울 것 하나 없이,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며 누에고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걸어요. 몸을 움직이면 기분 전환도 되고 무심코 지나친 사소한 것들이 떠올라 글감이 되기도 하니까요.
나보다 앞서 걸어간 이들의 조언을 따라 몸을 일으켜 본다. 비가 오는 낮에도 서늘한 밤에도 나가 걷는다. 그러나 모두 잠든 하늘엔 내 얘길 들어줄 별 하나 없다. 외롭다. 한참 거닐다 돌아온 깜깜한 방엔 흐트러진 이불만이 날 반긴다.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글감이 찾아온다는데 어째서 나에겐 찾아오지 않는 걸까. 나는 하루하루 무얼 해야 할지 잊어버린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야. 머리 위로 가득 흩어지는 생각. 닫은 귀를 뚫고 들어오는 징징거림. 하지만 받아들여.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이 순간이 진짜야. 변하는 온도에 맞춰 옷을 다르게 입고, 밥을 먹고, 조용한 집과 달리 시끄러운 온라인을 구경하고, 다른 곳은 어떻게 사는지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는 뉴스를 멍하니 보는 너의 일상이 현실이야.
이른 새벽이 올 때까지,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와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내일에 대한 방황을 하고서야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동안 잠으로 잃었던 시간을 날 위해 써본다. 내가 갈 곳을 향해 걸어본다. 지저분한 방안을 말끔히 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고 엄마가 사준 노란 프리지어를 분홍색 꽃병에 꽂아 하얀 책상 위에 둔다.
나는 매일 기다린다. 혹여나 그토록 바라던 무언가 날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마음 깊숙이 심으며 닫힌 방문을 바라본다.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는 나에게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티끌 같은 기대감을 남모르게 품는다.
해가 내리쬐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낮에 책상 앞에 앉는다. 하염없이 떠도는 몽상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반드시 끝날 이야기를 생각하며 끙끙댄다. 그리고 다시 어둡고 탁한 밤을 지새우며 조금은 달라질 내일을 기다린다.
그러니 나, 여기에 기다리고 있어.
어디에도 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