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폐인작가 May 13. 2024

무인도시

무기력한 일상에 무대인사라는 도파민


*종영 시: 영화 종료 후 무대인사

*시영시: 영화 시작 전 무대인사


총 6장 중 4장만 출력했다.


날씨는 더웠고 시내는 축제였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지고 있었다. 더 일찍 나오길 잘했지. 땀을 닦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많은 인파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첫 번째 영화관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상영관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 대기의자에 앉았다. 나처럼 무대인사만 보려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배우들에게 전달할 편지, 꽃, 선물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게 없었다. 준비한 거라곤 나의 갈증을 해소시킬 아아가 담긴 텀블러와 언제라도 사인받을 준비가 된 포스터가 있다는 점?


(기회만 온다면) 관심 있는 배우는 무조건 실물을 봐야 직성이 풀렸기에 다른 건 관심 없었다.  폰을 잡고 있는 손에 땀이 났다.


오?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무대인사를 위해 출근하는 배우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타났다. 배우들은 사람들과 내 앞을 지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나는 타이밍 좋게 그 모습을 전부 촬영했다.


뭐야. 이거 좀… 좋잖아? 치열하게 예매한 자리가 무색해질 정도로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작년처럼 운에 날 맡겨보기로 했다.


그 뒤로 시작된 ‘무대인사 따라다니기’는 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이 되었다.


배우들의 팬서비스가 좋았던 덕분에 정말 가까이서 그들의 실물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배우가 내 쪽으로 가까이와 계속 머물러줬을 때가 최고였다. 팬들에게 열무라고 불리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내 고막을 녹였다. 그리고 그가 팬을 끝까지 챙기려는 모습에 두 번 반했다.


역시 이거야! 이 맛에 무대인사를 보는 거라고!


그러나 흥분도 잠시. 버스를 타고 두 번째 영화관으로 이동하던 나는 급격한 피로에 의자와 한 몸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도착해야 하는 정거장을 지나쳐버렸다. 아찔했다. 불안해서 버스 안을 둘러봤다. 그런데 첫 번째 극장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같이 버스에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을 보니 안심되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내렸다.

상영관에 도착하자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 트럭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첫 번째 영화관과 똑같았다. 바짝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아아를 벌컥 들이켰다. 영화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다시 나는 종영 시 무인을 먼저 보러 입장했다.


무대인사는 순조로웠다. 배우들은 팬들의 요구에 따라 유행하는 챌린지를 해주기도 하고 셀카도 찍어주고 사인하며 춤도 췄다. 문제는 나였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시영 시에 입장하는 내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었다. 언제 끝나는 거야?


배우들이 이 관을 떠나야 내가 다음관에 들어갈 수 있다. 속이 타들어갔다. 이러다가 다음 무인을 놓치면 어떡하지? 빨리 끝내고 나갔으면.(눈물)


배우들이 다음에 봐요~! 격하게 인사를 해주며 떠나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늦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숨을 고르며 앞을 쳐다보니 표 검사 줄이 한 2미터는 돼 보였다.


결국 난 배우들과 동시 입장하게 되었다.  


하필 그 관에서 그러는 건 나뿐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늦게 들어오는 게 나을 뻔했다.)

헐레벌떡 들어오는 나를 막아서는 경호원의 친절하고 단호한 안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천. 천. 히.’


경호원은 날 마주 보며 유치원생에게 횡단보도 건널 때 손 드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들어갈 타이밍을 안내했다. 나는 최대한 허릴 숙이며 인사 멘트를 날리고 있는 배우들 앞을 지나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두 번은 못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타임이 남았다. 실컷 봐버린 무대인사는 내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  또다시 초조해졌다. 길게 느껴진 배우들의 팬서비스가 끝나자마자 나는 또 뛰었다.


이번엔 택시다.  표값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시간 안에 도착해야 했다. 조금이나마 위안된 건 다른 몇몇 사람들도 나처럼 택시를 불러 황급히 다음 영화관으로 이동한다는 거였다.


무대인사 십 분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나는 숨을 고르며 맨 앞줄 (비록 사이드지만)에 앉았다.


아이컨택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회하기 전에 해봐야지. 나는 가방에서 구겨진 배우 포스터를 꺼내고 열심히 흔들었다.


끄아, 드디어!


배우가 내 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제 더는 여한이 없다. 그 모습은 내 폰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또 안타깝게도… 폰화질이… 여기까지. (희미하게 찍힌 배우의 이목구비 내가 알아보면 된 거다.)


이번에는 배우들이 사방팔방 뒤쪽 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소망했던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냈다.


“감독님! 사인 한 번만…”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꽤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무대인사는 급한 거 없이 아주 여유롭게 입장했다.

‘잘생겼다!’, ‘오빠!’, ‘여기도 좀 와주세요!’ 등등 소리치는 관객들과 바삐 움직이는 배우들을 나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구경했다.


후기 많이 올려달라 했으니 이 정도면 문제없겠지?



그렇게 무대인사는 전부 끝났다.

작년에 좋아하는 배우와 하이파이브 두 번 한 걸 생각하면 약간 아쉽긴 했지만 , 어쨌든 역대급으로 피곤하고 후련했던 무대인사 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당분간은 무대인사 n차 관람은 하지 않을 거 같다. 하하.




이전 09화 피할 수 없는 글쓰기 알고리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