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증의 시작

불안에서 평온으로

by 불완전 박사

어린 시절의 불안이 남긴 그림자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원인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 언제부터 불안이 시작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늘 마음속에 불안이 깔려 있었다.



불안한 환경 속에서


나는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두 분은 자주 다투셨고, 할머니는 화가 나면 엄마에게도, 어린 나에게도 화를 내곤 하셨다. 평소에는 분명 사랑을 주셨는데, 사소한 실수에도 크게 혼내실 때가 있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크게 혼났다. 그러다 보니 매일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이 심해지면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화난 할머니 얼굴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웃고 계신 얼굴만이 안전하다고 느껴졌던 그 시절 탓인지, 지금도 누군가 웃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진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부족했던 시간


어릴 땐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겐 그게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사랑은 ‘조건부’처럼 느껴졌다. 뭔가 잘해야 칭찬을 받는 것 같았다. 물론 엄마도 시부모님을 모시며 집안을 책임지느라 늘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아빠는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시고 자주 그만두셨다. 나중에는 술을 자주 드셨는데, 그날이면 집안이 불안해졌다. 나는 아빠의 화를 피하기 위해 늘 눈치를 보며 지냈다. 결국 내 곁에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허전함만 남았다.


분명 부모님도, 할머니도 나를 사랑하셨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안정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만 커져 갔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림자


성인이 된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범불안장애,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두려운 건 이 불안과 우울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거다. 내가 느꼈던 불안한 공기 속에서 아이들도 자라게 될까 봐 마음이 무겁다.


머리로는 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그 집에 살지도 않는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불안이 커지면, 여전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치료와 작은 희망


그래도 지금은 치료와 상담을 계속 받고 있다. 여전히 우울한 날이 있지만, 이제는 일상이 조금 더 수월해지고 행복한 날도 많아지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 앞에서 더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우울한 날이 있어도 웃을 수 있는 날도 있다. 언젠가는 웃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아이들이 내 불안이 아니라 평온을 물려받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