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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Feb 09. 2024

떠떠떠, 떠

책 읽는 이야기

  지난해 말 동네 책방에서 정용준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했다기에 신청했으나 급한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정용준 작가의 『선릉 산책』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주문해놓았던 책을 찾으러 서점에 들러 사장님과 정용준 작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가가 쓴 단편 소설집 ‘가나’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그의 작품 한 권을 다시 손에 들었다.


  이 글의 제목인 「떠떠떠, 떠」는 정용준 소설집 ‘가나’에 실린 작품이다. 제목만으로 지레짐작이 가는. 아니다. 어쩌면 정용준 작가의 책을 접한 독자에게만 짐작이 갈 법한 제목 떠떠떠, 떠.

  작품 속 등장인물은 심한 말더듬이다. 작가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아픔을 가진 누군가가 이곳에서도 존재한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더듬던 아이는 열한 살일 때 인생의 좌절감을 맛본다. 맛본다기보다 처절하게 세상이 말더듬이에게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된다. 그가 학급에서 부여받은 번호 27번. 담임교사는 27일엔 물론이거니와 7일, 17일, 혹은 담임의 기분에 따라 아이를 불러 세워 책을 읽게 한다. 한 글자로 읽어낼 수 없는 아이와 잡지나 뒤적이며 읽기를 독촉하는 선생과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을 조롱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혀를 탓하며 하얗게 질려가는 아이.

  그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여자아이였다. 시도 때도 없이 간질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던 아이는 자신의 비밀을 들키고 난 후 학교를 떠난다. 그 여자아이가 자신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게 해준 인물이기도 했지만 학교를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시간은 흘렀다.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그는 인형 탈을 쓰고 고객의 시선을 잡는 직업을 택한다. 사자탈 안에서 그는 굳은 혀를 움직이려 하지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소통의 방법으로 선택한 고갯짓과 손동작이 그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다. 판다 탈을 쓴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와 그녀는 각자에게 주어진 탈을 쓰고 세상 속에서 존재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자 인형과 간질 발작으로 쓰러져 눈동자가 하얗게 돌아가거나 관절 마디마디가 뒤틀려도 들키지 않는 비밀의 공간, 탈 속에 숨어 사는 두 사람.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공유하며 조금씩 다가간다. 그녀는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엄습해오던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갇힌 새처럼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이젠 자신이 발작에서 벗어날 때까지 지켜줄 그가 있다며 안도한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듣고 싶은 한마디, 사랑해.

  그러나 그는 말할 수가 없다. 어떠한 단어라도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돌처럼 굳어버리는 혀로 인해 숨은 가빠오고 가슴은 벌렁거린다. 어째야 하나. 그녀가 다시 쓰러져간다. 발작의 안갯속에서 그녀가 기대고 싶은 그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녀에게 말을 해야만 한다. 내가 곁에 있다고, 그러니 안심하고 잠시 다른 곳을 헤매다 돌아와도 된다고. 그리고 어렵게 입술을 열고 혀를 놀려 말을 하고 먼 의식 속에서 그녀는 듣는다.

  떠, 떠떠, 떠떠, 떠떠떠, 떠, 떠, 아아, 아아아하아아, 아아아, 아, 사, 사, 사아. 아, 아아, 아아아, 라라, 라라라라, 라, 라라라, 아, 아아앙, 해.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먼 세계에 속해있는 안갯속에서 그녀는 분명 그의 말을 알아들었으리라. 그리고 안심했으리라. 맨바닥에 누워 온몸을 뒤틀면서도 그의 고백을 따라 마음이 흘러가고 있으리라.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둘은 만났으리라.

  정용준 작가. 그는 슬픔은 어느 곳에서 시작된 아픔이기에 소설마다 슬픔이 이렇게 아름답고 절절하게 스며들어있나. 그의 창작실에 들어가 숨죽이며 작품을 써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 미간이 움직이는지, 어느 부분에서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지, 어느 부분에서 글 쓰던 손을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내던지는지.

  슬픔을 아는 자만이 작가의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가 박히겠지만, 그래서 그를 좋아한다는 독자들은 그의 글들로 인해 위로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작가는 이렇듯 샘솟는 슬픔을 어떻게 틀어막고 살아가는 것일까. 작품 속 주인공이 자신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의 희열로 작가 또한 슬픔을 상쇄시켰던 걸까. 읽는 내내 내 안에 쉼 없는 파문이 일었던 「떠떠떠, 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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