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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Mar 01. 2024

시집을 읽다가 문득

책 읽는 이야기

시집을 읽다가 문득  

   

아침마다 시집을 읽다 보면

어떤 시집은 너무 심심하고

어떤 시집은 너무 까칠하고

어떤 시집은 너무 달콤한 두드러기가 돋고

어떤 시집은 너무 어려워 읽다가 덮게 되고

어떤 시집은 너무 아파 온몸이 슬픔에 젖고     

오늘 아침에 읽은 허수경 시인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은 어려운 듯도 하고 까슬한 가시에 걸려 쓰리기도 해서 후딱 넘겨버리고도 싶지만

알 수 없는 미련 같은 것이 생겨 마음 자락을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아 읽은 자리 또 읽고 되새김질하며 행간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러다 문득 시인의 마음 결이 내 안에 어떤 무늬를 만들었다는 느낌

고대 화석에 새겨진 어느 한 문양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본 느낌

박제된 슬픔의 무게가 겹물결을 일으키며 내게로 와 닿은 느낌     


  위의 글은 오전에 쓴 글로 시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을 글로 적어 봤다.

  매일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 가까이 시를 읽는 시간으로 정하고 될 수 있는 한 나와의 약속을 실천하려 노력 중인 일과의 일부분이다.

  이번 주 내내 허수경 시인의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을 읽었는데 내겐 시가 너무 어렵기만 했다. 어떤 시는 영 낯설게 느껴지고 어떤 시는 그나마 한 문장이라도 공감을 얻기도 한다. 

  예전에도 허수경 시인이 낸 시집 중 ‘혼자 가는 먼 집’과 ‘허수경 시선’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겐 너무 버거운 시 세계여서 그 안에 한 발짝도 들이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미련은 여전해 다시 반복해 읽게 되는 아주 특이한 시집이라 하겠다.

  오늘은 그나마 좀 쉽게 다가오는 시 몇 편을 읽었다. 시의 문장과 행간을 다 이해하고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 울컥하기도 하고 싸한 허무감이 느껴졌다. 시란 것이 읽는 이의 감정선에 따라 수만 갈래의 느낌으로 나뉜다고 하지만 난 어떤 시를 읽든 울컥하며 목울대를 자극하는 슬픔의 시가 마음을 이끈다. 그 리듬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데 오늘 만난 몇 편의 시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 중 ‘불을 들여다보다’란 시가 특히 그랬다.     


    불을 들여다보다  /  허수경     

  불을 먼 별 눈먼 별

  들여다보듯 그렇게 들여다보다

  저 고요 나는 어쩔 것인가    

 

  노을 속으로 끌려가는

  새떼 바라보듯 그렇게 들여다보다

  저 아우성 나는 어쩔 것인가   

  

  불속에서 마치 새 숲을 차린 듯

  제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양떼의 발목인 듯

  하얗게 숨을 죽여가는 저 나무들 나는 어쩔 것인가     


  몸에 남은 물의 기억을 다 태우는 당신과

  당신 물의 기억이 다 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쩔 것인가     


  아궁이에서 불에 타고 있는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며 시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물기 가득했던 가지에서 서서히 물기가 빠져나오고 나무는 타닥거리며 아우성치다가 늙은 양의 털 닮은 물기를 뱉어낸 후 조금씩 어둠의 빛으로 변해간다. 끝내 마지막 불씨마저 사라지고 무덤처럼 덩그러니 남은 한 줌 재. 잎새 돋우고 꽃대 밀어 올리며 숨을 내뿜던 나무의 최후 모습이 형체도 분간하기 어려운 한 줌 재로 남는 것을 지켜보며 시인은 묻는다. 몸에 남은 물의 기억을 다 태우는 당신과 /당신 물의 기억이 다 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쩔 것인가’. 

  시인은 고정된 시선 너머의 누구를 향한 질문을 문단마다 던지고 있다. 그 질문이 내게 닿아 그리움 같기도 하고 허무감인 것 같기도 한 이 느낌은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시를 통해 또는 시인의 눈빛을 통해 내게 전이된 사유는 내가 어디로 흘러가 닿길 바라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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