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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Mar 08. 2024

훌훌 털고 훨훨 날아가길

책 읽는 이야기

<훌훌> 책을 읽어내려가다 중간에 멈춰야만 했다. 가슴이 저려와 한 번에 쭉 읽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우선 읽었다.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을까, 그 의도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입양 가정을 인터뷰한 뒤 소설의 줄거리를 잡았던가 보다.

초고를 완성 후 인터뷰했던 어머니께 검토를 부탁했었단다.  그때 어머니의 반응에 작가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되었단다.

"그럼요! 당연히 해드립니다. 그리고 꼭 검토해야 하고요."

작가는 어머니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한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우리의 결심을 대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이어 말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걸 나도 안다고. 작가에겐 자폐 장애가 있는 딸이 있다는 말로 인터뷰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었다. 당사자의 마음을 들여다 봐준 작가가 고마웠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난 후에야 나도 이 책을,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 책 안에 들어있는 아픔을 읽을 용기가 생겼다. 아픈 자들의 속을 대변하는, 그래서 행간마다 눈물이 흥건하게 스며있는  이 소설을. 


남남처럼 필요한 말만 하는 관계인 할아버지와 단독주택 1층과 2층에서 따로 생활하던 어느 날,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양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할아버지에게 전해 듣는다. 그리고 양엄마가 낳아 키우던 연우라는 아이가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아이의 돌봄은 당연히 유리의 몫이다.

연우에 관해 무신경으로 일관하던 유리는 연우에게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되고 엄마의 죽음과 관계되었다는 것, 또한 엄마에게 학대 당하며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여러 상황들로 인해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비밀을 친구인 세윤이 알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되고 이후 둘은 서로의 속 사정을 이야기하며 아픔을 풀어나간다.


세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윤은 콧소리로 웃었다.

"세희가 그렇게 썼더라고. 야, 우린 이런 말 해 본 적 없지 않아? 별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 그런 걸로 서러워하는 게 지겹기도 하고." (p.188)


유리와 세윤의 담임인 고향숙 선생님은 유리의 편이다. 힘들다, 괴롭다 말하지 않아도 유리의 표정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주는 엄마 같은 선생님. 그래서 이름에 '고향'이란 단어가 들어갔나 보다. 고향이 어디 인지 모르는 유리의 조력자 같은 고향숙 선생님과 연우의 소년보호재판장에 함께 갔다 돌아오는 길.


"선생님."

"왜?"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적 있으세요?"

"그럼 있지, 왜 없어."

"궁금하지? 어떤 일들이었는지."

"애들이 내 뒷이야기 하고 다니지 않던?"

"난 말이지. 그런 소문들이 다 진짜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힘든 일도 겪어 봤어."

"어때. 대단하지?" (p.206)


"그 정도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독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더라. (... 중략)"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p.207)

"있잖아. 유리야."

"네?"

"힘들 때 웃는 거, 효과가 상당해. 이거 경험담이야."

나는 선생님이 모니터 바탕화면에 깔려 있던 코믹 재난 영화 포스터를 떠올렸다. 얼마나 힘들어야 웃음으로 고통을 포장하게 될까 생각했고 선생님의 모를 삶과 후회조차 할 수 없게 된 엄마 서정희 씨를 생각했다. (p.208)


유리는 세윤이 보내준 영상을 통해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궁금하던 친부모님이 빗길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과 그날 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양엄마의 남편과 어린아이였다는 것, 그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양엄마ㅇㅔ게 자신이 어떻게 입양되었는지도.


언젠가 만나고 싶었다.

두 사람 앞에 서서 따지듯이 말하고 싶었다. 나를 왜 포기했느냐고 당신들과 상관없이 나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노라고. 대학도 나왔고 내 힘으로 돈도 벌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과 상관없이, 당신들의 책임과 아무런 상관없이 나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아왔노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라도. 엄마와 아빠를.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어 버렸다. (p.234)


할아버지가 복막암 수술받는 시각. 유리를 찾아온 세윤은 자신의 보물 1호라며 편지를 꺼내 유리에게 보여준다. 그 편지는 세윤이 베이비박스에 넣어질 때 박스 안에 함께 들어 있던 친엄마의 편지였다. 그 편지엔 미안하다는 말이 열세 번 들어있다며 백 번 넘게 읽어서 외울 수도 있다고 세윤은 말한다.

세윤은 말을 잇는다.


"너희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널 떠나신 거잖아."

"엄마가 베이비박스에 나를 맡길 때 열여덟 살이었대."

잠시 뒤, 세윤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p.248)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난 수빈이라는 아기와 나를 지켜 주고 싶어 했던 서정희 씨의 마음을 생각했다.

나는 서정희 씨를 생각하며 조용히 말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p.249)


두 아이는 그렇게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를 이해하고 자신의 아픔과 운명 같은 삶을 받아들였다.


가독성 있는 <훌훌> 책을 읽는 동안 난 몇 번씩 끊어 읽으며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작품 속 유리처럼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고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저릿한 통증을 내내 앓아가며 책장을 넘겼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거야. 그 시간을 건너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야.

다만 그 아픔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관건인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어쩌면 웃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

한바탕 웃다 보면, 눈물 나게 웃다 보면 없던 힘이 솟아나기도 하니까.

아프다고 그때마다 울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웃지 말라는 법 또한 있는 것도 아니니까.

허허 웃으며 툭툭 털어내다 보면 어느새 슬픔을 넘어선 너를 발견하게 될 거야.

그땐 자신을 토닥이며 말해줘. 잘 지나왔다고. 견뎌줘서 고맙다고. 사는 게 어쩌면 그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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