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예민하지 않다. 시골에서 자란 탓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마당에서 풍겨 나오던 소똥 냄새, 오물 냄새도 뭉뚱그려 그저 시골 향취라 여겼다. 내가 자란 시골엔 다양한 냄새가 공존했다. 비 오는 날 훅하고 코끝으로 들어오는 흙냄새부터 시작해 봄날 젖었던 볏가리에서 풍겨 나오던 묵은 풀 냄새, 마당 한 귀퉁이 거름더미까지 마당에서 풍기는 냄새가 서로 섞여 말 그대로 시골의 냄새였다.
내 태어난 곳은 철원이다. 사방이 모두 산으로 둘러있고 널따란 평야가 끝없이 이어진 곳. 들녘 어느 곳에서나 마을 어른들의 일하는 모습이 당연했고 논길 밭길로 아이들은 당연하게 뛰어다녔다. 뛰다가 미끄러져 논에 빠져 생쥐 꼴이 되면 같이 뛰던 친구들이 걱정보단 까르르 웃는 일로 놀이 삼던 때.
봄이면 따끈한 봄 햇살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 냄새가 가득한 들판을 우린 뛰어다녔다. 이마에 땀이 송송 배어날 때쯤이면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캐고 달래를 찾았다. 들판의 겉흙은 봄볕에 데워져 따뜻했으나 냉이 뿌리가 박힌 곳의 흙은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아 질척이거나 단단했다. 들판을 휘젓고 다니다 싫증 날 때쯤이면 얕은 산자락으로 분홍빛 진달래가 피어나고. 우린 진달래꽃을 따러 온 산을 넘나들다 보면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봄은 그나마 모든 냄새가 향기로웠다. 들녘도 그렇고 산자락도 그랬다.
문제는 여름이었다. 말 그대로 어디를 가도 전형적인 시골 냄새가 스며 있었다. 집 집마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 모아놓은 음식물 쓰레기 더미부터 시작해 외양간 냄새와 강아지똥 냄새는 그나마 구수하다고 표현할 정도다. 가장 결정적인 냄새는 감자 삭히는 냄새였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감자를 캐며 성한 것과 상처가 생긴 것, 그리고 알이 작은 것을 따로 구분한다. 성한 건 볕이 들지 않는 광이나 그늘진 곳으로 옮기고 알이 작은 건 감자조림 등 밑반찬을 만든다. 상처 생긴 감자는 갈색 함지박에 담아 물을 붓고 삭이기 시작한다. 감자가 뽀얗게 될 때까지 물을 갈아주며 뒤적이다 보면 물속에서 서서히 감자가 썩기 시작한다. 물을 갈아주며 한두 번씩 뒤적여주는데 그때마다 퍼지는 냄새는 음식물이 썩어 퇴비가 되는 냄새는 비길 것이 못 된다.
정확하게 며칠이 지나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알맹이가 녹아내려 껍질만 남은 감자를 꺼내면 함지박 바닥에 뽀얗게 남은 게 바로 전분이다. 전분이 되었을 땐 구정물 같던 물도 깨끗해지고 주변의 온갖 냄새를 집어삼킬 정도의 강렬한 냄새도 서서히 사라진다. 뽀얀 전분을 마당에 펼치고 햇볕에 말리는 동안 우린 마당에서 뛰어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잠시 그 명령을 잊고 기분 내며 뛰다간 어느 순간 부지깽이를 들고 호령하며 부엌을 뛰어나오는 엄마의 서늘한 표정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분은 우리 집의 별미를 담당하는 음식 재료가 되었다. 감자범벅, 감자 개떡, 감자송편, 우리가 알 수 없는 음식의 어떤 부분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가을의 냄새는 낙엽의 계절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당 가득 널어놓은 고추로 인해 코끝을 찌르는 매콤한 냄새와 온갖 콩 종류를 말리고, 벼를 말리고, 참깨 들깨를 말리던 마당은 시골의 모든 냄새를 만들어냈다. 가을은 점점 깊어지고 늦가을과 초겨울이 맞물릴 때쯤 들판에서 추수를 끝낸 볏가리가 집 마당에 높이 쌓여 짚 냄새를 풍겼다.
지금은 그 시절의 냄새를 찾아 가끔 들녘으로 나서보나 그때의 냄새를 찾을 순 없다. 농부의 일손보다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사람은 기계 안 조종실에 앉아있다. 사람들의 구수한 농담이 흘러 다니던 들녘에선 기계를 돌리는 소리와 기계기름 냄새가 대신하고 들꽃 대신 반듯한 시멘트 길이 놓여있다. 참 아쉽다. 그러나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만은 없는 일. 농사일로 허리 휘는 농부들의 삶 또한 내 어릴 적 추억의 한 부분이었기에 그들의 안락해진 삶 또한 반겨 마지않는다.
가을 잠자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아침. 가을은 들녘부터 시작되고 다양한 빛깔로 냄새가 피어난다. 어딘가로 묻힌 추억의 냄새를 더듬는 날 또한 다가오는 시절 안에서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