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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어 다행인 별게 없는, 마흔

by 미오

두 장 밖에 안 남은 달력을 넘기며

그 얇은 가벼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해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벌써 10월이라니…

이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올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맞다. 내 이야기이다.


마흔, 흔히 말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 나이, 불혹.


그렇다. 올해 나는 마흔이 됐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마흔’이란 단어가 영 어색하다. 내 앞에 ‘마흔’이 붙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지만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자연스레 올해 40입니다.라고 대답했으니, 어느 정도 내 나이를 받아들일 때가 되긴 됐나 보다.


어릴 적 막연히 생각했던 마흔의 이미지와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마흔의 삶이 지금 나의 삶과 전혀 교차점이 없기에 아직도 ‘내가 마흔이 됐다’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상상 속 마흔은, 조금은 고상하고, 우아하고, 여유롭고, 세상을 넓게 둘러보는 시야를 갖춘,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냥 나이만 마흔인 사람이 됐다.


마흔 살을 넘긴 점만으로 깊어지거나 넓어진 것은 없다. p.105


오랜 친구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우리가 왜 벌써 마흔이지? 아직 중학생 때 그대로 같은데?라는 말을 주고받다 보니, 마음은 영원히 10대에 머문다는 그 말을 알 것도 같았다.


그래, 마흔이 뭐 별거 인가?

마흔은 그냥 마흔이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시기,

별게 없는 그런 마흔.


하루에도 몇 번씩 유혹에 흔들리지만,

별일 없어 다행인 그런 마흔.


아무래도 상상했던 멋진 마흔은

이미 틀린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썩 나쁘지 않으니, 그거 면 된 게 아닐까?라고 혼자만의 위로를 해본다.


일단은

별일 없어 다행인,

별게 없는 마흔과 얼른 더 친해져 봐야겠다.


곧 마흔 하나가 될 테니까.



오늘 타인의 책장 속 책

<호의에 대하여> 문형배/김영사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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