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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하늘은 나만의 것

by 미오

가을은 깊어지는데 마치 여름 장마처럼 요 며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잔뜩 흐린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시리게 푸른 가을 하늘이 그리워졌다. 하늘과 구름이 가득 담긴 사진첩을 둘러본다. 이렇게 맑았던 날이 언제였더라?


빗소리에 괜스레 가라앉은 마음으로 책장을 둘러보다 얇은 시집을 꺼냈다. 오래 손길이 안 닿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뿌연 먼지가 일었다.


툭툭 털고 펼친 시집 안에는 하늘과 구름이 있었다.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p.25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던 게. 잘은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 처음 남은 하늘은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다. 친구와 버스 정류장 연석에 걸터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절은 늦은 여름이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 난 한적한 마을 버스정류장엔 우리뿐이었다. 하늘은 노을빛이 섞인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해가 모습을 숨기면서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 카메라가 있었다면 사진으로 담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땐 두 눈에 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두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던 그날, 빛이 쏟아지던 하늘을 올려다보며 친구는 말했다.

천국 있다면 저런 모습 아닐까?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와 참 많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 옆을 늘 지키는 작은 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친구와 함께였으니까.

어린 마음에 나중에 천국도 함께 가자, 하던 친구와의 인연은 덧없는 세월의 흐름에 실어 떠나보냈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인연도 구름처럼 흩어지고 흘러가는 것이 또 인생이라는 걸 배워간다.


그래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때 함께 봤던 하늘을 그 친구도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추억은 나만의 것이니 빛이 쏟아지며 황홀하게 물들던 그 순간의 하늘도 나만의 기억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타인의 책장 속 책

<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문학동네

이미지 출처: 본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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