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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진 May 28. 2024

유목적 공동체(Nomadic Ecclesia)로의 전환

4. 유목적 공동체로 가기 위해서(제2의 종교개혁)

첫째, 지상으로 드러난 교회의 건물들은 행정적으로 필요한 아주 조그마한 사무실 한두 개만 남기고 모두 사회로 환원하라. 물론 지금까지 교회가 사회를 위해 봉사한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소유한 건물들이 많아지고 유지 보수하는 비용이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사회로 환원되는 재정이 줄어들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봉사의 필요는 더욱 많아졌다. 과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사회의 문제가 지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졌고 국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교회마저도 그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 사회 최후의 방어선이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경제적 부정부패를 비롯한 온갖 사회 문제가 쏟아지고 있는데, 주된 이슈들을 보면 노인 복지, 청소년, 장애인, 외국 노동자 등 사각지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많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시설에 자라 성인이 되는 청년들에게 있다. 특별히 고아원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성인으로서 자립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머물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사회의 전반에 이것만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소외된 자들이 교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가? 교회가 재산을 정리하여 사회에 환원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해결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리고 교회가 다시 영적 권위를 회복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임 목회자들은 사회에서 일반적인 경제활동을 하며 교회 공동체를 섬기라. 60,70년대 한국의 교회 상황을 보면 수많은 평신도들에 의해 교회가 일어났다. 장로, 권사, 집사들은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직장이나 밭으로 나가 노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에 잠시 들러서 집안일을 간단히 처리한 후, 교회로 모여 늦은 시간까지 기도를 했다. 중노동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기도하며 섬겼고 헌금도 아끼지 않으며 교회를 돌보았다. 일부 목사와 전도사들도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일부 지각 있는 목회자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계약직 시간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임 목회자들이 사회와 분리되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믿음도 그렇다. 철저하게 사회 현장에서 믿음으로 극복되는 메시지가 전해져야 하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은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적인 종교인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전임 목회자들의 월급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현재 교회 재정의 상당한 부분이 목회자들의 월급으로 지출되고 있다. 


셋째, 대형 모임을 모두 소그룹으로 나누고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게 하며 그 모임을 이끌어갈 리더들을 세우라. 모임 장소와 모임의 횟수, 시간, 날짜는 그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공동체 멤버들이 결정하도록 하고 특별히 시간과 장소, 모임 횟수에 매이지 않도록 하라, 가능한 한 많이 모여 서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며, 주변을 돌아보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라, 전임 목회자들의 역할은 소그룹들이 신앙적으로 건강하게 유지,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섬기면 된다. 헌금도 그 공동체에서  모아 지출을 결정하고 사회를 위해 쓰면 된다. 


넷째, 한반도를 넘어서 동남아, 중앙아시아, 중동-페르시아지역으로 눈을 돌려라. 이 지역들은 역사적으로 한 때 대부분 유목민족의 제국들이 장악하고 지배한 땅들이다. 유목민족의 후손인 우리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좁은 땅에 머물지 말고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한다. 북한과 일본이라는 감정에 메이지 말고 더 크고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 북한과 일본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발목을 잡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북한을 상대로 감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이성을 잃고 이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다. 더 이상 이런 감정들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도록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푸른 초원과 금빛 출렁이는 사막으로 달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교회의 사명은 이것에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세계 교회가 다시 그 성경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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