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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진 Jun 01. 2024

나의 유목 인생

나는 경상도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타지 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20살 때 혼자서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서울에 갔던 적이 있다. 시골 촌놈이 난생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떨리고 긴장이 되던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그때 유행을 알아서 청바지에 청자켓을 입고 장발 머리를 하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도끼 빗을 꽂고 상경을 했다. 지금이야 2~3시간이면 서울가지만 그 당시는 최소한 5~6시간 이상 걸려야 했다. 물론 그전에 가까운 거리는 혼자서 기차로 가끔 다녔지만,  혼자서 장거리 기차여행은 그때가 처음이라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주변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좋아하던 기차 바퀴 소리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긴장한 상태로 수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하니 그 긴장감은 극도에 달해 있었다. 청량리역 청사는 얼마 크고 웅장했던지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간신히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거대한 건물에 압도당하여 내 안에 있던 촌티를 한꺼번에 뿜어냈었다. 


이렇게 시작한 타향살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 나의 유목 인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작은 시골 촌놈이 대학 시절에 일본과 유럽 여행을 하였고 20대 후반에는 타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30세가 되어서는 중근동지역으로 이주하여 그동안 3개 지역을 옮겨 다니며 활동했다. 이제 내 나이 60세가 다가오는 즈음에 또 이동할 계획인데 이번에는 동남아지역이다. 지금까지 짧은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결코 지루할 시간이 없었다. 늘 흥미진진한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루해질 즈음이 되면 짐을 싸서 이동, 그곳에 정착하여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또 이동,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고 정상 궤도에 올라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유목 생활이나 마찬가지였다. 현대판 유목민인 것이다. 나처럼 인생을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외교관, 해외 주재원, 여행업 종사자, 국제 NGO 요원, 선교사 및 봉사자 등이 이에 속한다. 


나는 성격상 지루한 상황을 싫어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다닌다. 나는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다. 왜냐하면 일정한 패턴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나는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채찍질한다. 나의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나는 새로운 뭔가를 만나면 흥분하여 눈이 반짝이고 생기가 솟는다 하고, 반면 늘 반복되는 일상을 계속하면 우울증 환자처럼 보인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새로운 도전이 없으면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사람들, 일을 하더라도 새로운 일들, 뭔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대부분 남자들이 나와 같은 것은 아닌지… 나만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과 같이 시스템 속에 갇혀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스템 속에 갇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관점에서 나는 행운아이다. 유목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문화 속에서도 여러 지역을 이주하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일정기간 그곳에서 살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렇다. 여러 곳을 단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한 장소에 정착하여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수년을 살다가 다시 이동하여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 정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간혹 본의 아니게 이런 상황에 놓여 이주하였다가 정착에 실패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종종 있기도 하다. 


중근동 지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 개의 언어는 한 사람의 인격체이다’ 즉 다시 말해서 한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행운아이고 축복받은 인생이란 뜻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을 존경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근동지역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이민 가는 것을 전혀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의 최대 기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정주민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세계관이다. 


나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언어는 실력이 아니라고…’ 유독 우리 한국사람들만 언어를 하나의 실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한 지역에 정착하여 문화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구걸하는 거지(집시)들조차도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코 언어는 실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언어를 좀 할 줄 안다고 으스댈 필요도 없다. 언어는 손짓 발짓하면서 소통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학문적으로 더 깊이 있게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토론 주제인데, 우리 모두가 학문을 닦는 것은 아니다. 우리 언어의 국문학도 엄청 어렵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국어를 70점 이상 맞은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니 이 또한 스스로 놀라워 따름이다. 


나는 기대한다. 나의 60대에 동남아 지역에서 어떤 인생이 펼쳐질 것인지? 그곳에는 지금까지 내가 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는 성공이냐? 실패냐? 큰 의미가 없다. 삶 자체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새롭게 도전하는 삶,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 기회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기회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여태껏 나는 성공해 보려고 욕망의 눈을 이글거리며 살아오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욕망의 정도에 비례한다. 욕망이 크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욕망이 작으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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