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 ㅣ 르네 피스터 ㅣ 배명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배낭을 메고 당나귀와 함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본 언론은 "멍청하긴 당나귀를 저렇게 낭비하고 있잖아!"라고 매질을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당나귀에 오르자 "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부모구먼!"이라며 혼쭐을 낸다. 하는 수없이 아버지가 내려오고 아들을 당나귀에 올리자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가정교육이 형편없어!"라고 비난한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당나귀에 타니 이제는 "당나귀를 혹사 시키는군! 동물을 사랑할 줄 몰라!"라며 떠들어 댄다.
오늘날 대한민국 언론(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을)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그림과 더해진 네 컷 만화를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산업용 자재로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신문 쪼가리부터 텔레비전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이슈를 다루는 매체와 그것을 보는 방법 등을 막론하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합리적인 제재도 없다. 그에 맞는 처벌도 없다. 질러보고 만다. 우선은 떠들어 댄다. '아니면 말고!'식의 논조가 이미 지배적으로 뿌리를 내린 시대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것을 넘어서 기사가 지향하는 바, 그리고 그 기사로 인해 득을 보고 실을 보는 사람들의 면면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시대다. 이것은 단순히 지지하는 정치 세력의 다름만으로 해석하기엔 그 선을 넘어버렸다. 인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연예인도 스포츠 선수도 저명한 언론인 혹은 지식인도 교수 영감이 된다. 악플이 해일처럼 넘나들고, 그마저도 자정작용을 하자고 목소릴 높여 일부 주제의 기사에는 댓글란도 폐쇄했다. 지금도 이해 안 되는 행위로 댓글을 안 쓰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가 싶다. 난센스에 가깝게 한때 스스로 '선플'을 댓글 말머리에 붙이는 식의 코미디도 일어났다. 선과 악, 진짜와 가짜, 도대체 이렇게까지 혼탁해진 건 왜 때문일까.
결코 쉽게 읽어지는 책은 아니다. 저자가 뜻하는 방향성은 분명하나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정표는 새삼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미국이란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에서 일어난 온갖 비상식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에피소드를 신랄하게 들려준다. 더욱이 우리가 응당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휩싸인 대상과 주제까지도 저자가 목격하고 경험한 사유를 통해 철저하게 해부한다.
인종차별이라는 어쩌면 가장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자기검열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한편으로 그들에 비해 국가 구성원이 덜 혼합적이고 인종차별보단 대한민국 국민의 유별스러운 종특에 가까운 성향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일화들로는 솔직히 실감 날 정도로 다가오지는 않는 풍경이다. 어쩌면 인쇄된 활자 너머 관련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라면 보이지 않는 그곳의 불합리성을 가늠할지도 모르겠다. 집중과 선택이라는, 결국 정해진 시간 내에 해독하고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한정된 정보가 분명히 놓여 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익사할 만큼 밀려드는 현실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한 그 너머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찍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자주 인용하는 속담 중 하나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이다. 글은 쓰고 수정할 수 있고, 설령 발표 후에도 정정할 수 있으나 뱉어낸 말은 절대 수정할 수 없기에 아직 초등학생이라 하더라도 늘 말을 아끼고 조심하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책의 맨 끝, 옮긴이의 말에서도 옮긴이는 근래 들어 지나치게 민감해지고 소모적인 우리의 현실을 '아가씨'란 단어를 빌어 짧게 언급했다.
그리 길지 않은 관습과 문화의 행태 속에서 특별히 원인을 두거나 의미를 포섭하지 않고 이어져온 어떠한 습관들이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어떻게 충돌하는지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노키즈존도 그런 맥락에서 이미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인구수에 육박하는 자동차에 달린 블랙박스는 모두를 감시하는 눈이 되었다. 유모차에 오른 어린아이 손에도 쥐어진 스마트폰은 눈과 귀와 입이 되어 세상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전한다. 질식할 만큼 빼곡한 그것들이 어느 순간, 정치와 사상과 이익과 욕심 그리고 역사와 맞물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라는 책의 부제는 몇 꼭지에 펼쳐 소개되는 미국의 현실, 그들이 만들어낸 차별과 선택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된다. 우리도 어쩌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개인의 이익을 채울 수 있다면 기꺼이 두 입술을 맞닿고 외면하진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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