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 슈렉 Aug 17. 2024

[독서일기] 이 도시를 사는법 ㅣ 어반북스

아주 어릴 적 내 꿈은 대통령이었다. 기억이 나는 이유는 우리 반에서 대통령을 꿈이라고 쓴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질문에 그렇게 쓴 이유는 그냥이었다. 멋있어 보였으니까.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스무 살이 지나 아마도 2002 월드컵을 경험한 어느 때로 짐작된다. 대통령이란 꿈은 접은 지 오래였고, 서울 시장 정도면 제법 재미가 있겠다 싶었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우리나라 수도에 천만 정도 되는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여전히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신당동이란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다. 군 면제에 유학 경험도 없어서 서울을 가장 길게 떠난 때는 기껏해야 신혼여행 정도가 전부다. 그만큼 내 인생은 오직 서울에서 만들어졌고 이어지고 있다. 


한때 인구수가 천만이 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높은 집값으로 인해 천만 아래로 인구가 유지되고 있다. 인구밀도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대한민국의 수도. 없는 게 없는 도시. 아니 정확히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들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 그래서 오래전부터 수도를 이전하거나 서울에 집중된 다양한 인프라를 지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서울이다. 



서울이라 쓰고 대한민국 전체라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도시. 더욱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SNS가 만들어낸 21세기가 시작되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서울은 현란한 자본주의의 간판이자 분초를 다투며 바뀌는 유행의 무대가 되었다. 너무 빨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 돼버렸다. 


책은 30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과의 짧은 인터뷰를 담는다.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같은지라 예닐곱 명 이후에는 페이지에 인쇄된 그들의 답변만 읽어도 어떤 질문인지 감이 잡힌다. 마치 무표정하게 복붙해버린 프랜차이즈 매장의 간판을 보는 느낌이다. 


나아가 그들의 답변은 다른 듯 닮아있다. 주제가 서울이기 때문에 또한 그들의 연령대와 활동하는 직업군이 은근 닮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무리도 아닐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서울이란 거대한 생명체를 소개하는 해부도와도 같다. 과거의 서울이 아닌 작년의 서울이 아닌. 바로 오늘 지금의 서울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의 렌즈를 이 책이 대신한다. 


어릴 적엔 쳐다도 보지 않던 성수동의 변신. 이슈는 많이 사라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굳건한 강남. 30년 가까이 굳건한 명맥을 이어오는 홍대. 그리고 대여섯 곳으로 압축되는 서울의 주요 이슈 포인트들이 반복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경기도 도시와 경계를 맞닿고 있은 외곽의 지역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유행의 흐름은 모든 이들에게 같은 형태로 어필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인터뷰 이후 서울 관광 코스, 그리고 3개의 주제로 소개되는 매장의 나열은 프랜차이즈 같던 이 책의 무표정한 얼굴에 조금은 밝은 미소를 띠게 해주는 미약한 편집이 된다. 하나 그마저도 대부분의 매장이 중구, 용산구, 강남구, 성동구, 마포구에 있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도봉구와 강북구, 영등포구와 금천구, 광진구와 강동구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겠으나, 아직 서울에서도 메인스트림에 이르지 못한 현실 때문일까. 


가장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선택하자면 주황색이다. 표지의 주황색은 늘 배고픈 내 식욕을 더욱 돋워주었고, '서울'이란 상징을 또 어떻게 풀어갈까에 대한 기대감으로 페이지를 넘겼으나 아쉽게도 그 안엔 내 입맛에 맞지 않은 메뉴가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가. 서울은 그렇게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로 지금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속도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으니. 


홍대, 종로, 강남을 하루가 멀다 하고 뻔질나게 찾았던 그 시절의 열정으로 서울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때에 비해 나이가 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클럽데이에 밤새 춤추던 체력은 없지만, 아직 들여다볼 열정과 관심만큼은 두근거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믿고 싶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78768

작가의 이전글 [독서일기] 식후 30분에 읽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