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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그리는 말과 표현

by 잭 슈렉

술을 좋아한다. 절주하면 좋겠지만 과음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술은 늘 달콤하다. 그러다보니 한창 마실때엔 종종 '필름이 끊겼다'는 말을 했었다. 언제부턴가 궁금했다. 도대체 저 말은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필름'이라면 영화를 촬영할때 쓰는 그 필름이 맞을 터. 사진 필름은 한장씩 낱장으로 찍으니 끊겼다는 말은 불가하다.


필름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려 말이 될지도... 연속 동작을 찍는 촬영용 필름의 일부분이 끊겼다는 말이 틀림없으니, 저 말은 영화산업이 한창 왕성하던 어느 시절 충무로의 영화 스탭이 먼저 말한 것은 아닐까? 감독이나 미술감독 보단 촬영감독이나 촬영보조 혹은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연출이나 제작 파트도 유력한 용의자로 보인다.


저 말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미술 분야 종사자였다면 '나 어제 캔버스(혹은 스케치북) 찢었잖아'라고 말했거나, 음악 분야였다면 '나 어제 기타줄 끊어 먹었잖아'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야구방망이가 부러졌을 수도 있고, 농구공이 찢어졌을 수도 있다. 아주 오래된 속담이라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고 현대판 격언이라고 하기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 먹고 투덜거리듯 내뱉는 말이라 좀 모양이 빠져서 어디에도 갖다 붙이기 참 어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기억력이 나쁘고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형광등 같다'라고 말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은 거의 안하듯, 이제 곧 '필름이 끊겼다'라는 말도 과거속에 잊혀질 말이 될 것이다. 훗날에는 '나 어제 데이터 끊겼잖아' 혹은 '나 어제 와이파이 안되는 곳에 있었어'라고 기대도 해본다.


속담이란게 본래 약간의 과장과 허세 그리고 허풍이 담겨 있는 법인데 그 중에서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류의 속담은 궁극의 표현을 보여준다. 아니 어떻게 두명이 같은 음식 먹는데 바로 옆 사람이 죽어도 모를만큼 맛있다는 말인가! 당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는 몰라도, 제법 화술이 좋은 누군가가 이 말을 걸출하게 뽑아냈으리라. 결국 '아주 맛있다는 맛'을 저렇게 작위적으로 표현한건데 우린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쓴느 걸 보면 문학이든 예술이든 약간의 인공첨가물 흔히 말하는 MSG는 필수 아닌 필수라 감히 생각되는 바이다.


속담도 격언도 아니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경험한 표현도 이어서 소개한다. 점심밥 잔뜩 먹여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과일을 또 한 접시도 아닌 한 쟁반을 내오셨던 엄마는 늘 우리에게 '과일은 배 안부르다~'라고 한다. 아니 어떻게 과일이 배가 안 부를 수가 있나! 자식놈들 더 많이 먹이려고 하시는 말인건 알지만, 저 말을 할때의 무표정한 얼굴과 일정한 목소리 톤은 과일을 먹지 않고 거절하면 적잖은 잔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짐작하게 할 정도다.


더욱이 정말 놀랐던 것은 신혼 시절, 처갓집에 가면 장모님께서도 내 엄마와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저 말을 했었다. 다행이라면 아들놈이 아닌 사위놈이라 조금 부드럽고 나긋했다는 점 뿐. 큰소리로 대답하고 직전에 두공기 반을 밥먹은 나는 배 하나 안부른 과일도 정말 열심히 먹었다.


말은 시대를 반영한다. 표준어도 그런 연유로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형되고 개선된다. 롱다리 숏다리 썰렁개그 등이 사라진 자리에 이젠 소두 아재개그 급식체가 자리한다. 익숙한 자리에 낯섦이 자리하는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늙어간다는 반증이다. 타임머신이 없으니 아쉬운 마음에 필름 끊겼다는 말을 빌어 아둥바둥 시계 바늘을 잠깐 멈춰본다.


또 어떤 새로운 표현이 세상 속 풍경을 스케치할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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