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짓는 시간
살아보니 정말 어려운 일 세 가지가 있다.
이 세가지만 잘 해도 성공할 것 같은데,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가 않다.
첫째는 뭔가를 시작하는 일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그 일을 잘 매듭짓는 것이다.
오전 11시 30분은 애매한 시간이다.
곧 다가올 점심시간, 어디서, 뭐를 먹을까 메뉴를 고르며 보내거나, 붙잡고 있는 일이 좀처럼 진척이 안되고 있다면, 초조와 긴장으로 예민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 11시 30분은 오전 일과를 '매듭'짓는 시간이다.
하루를 긴 스펙스트럼으로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 이지만 이 스펙트럼의 넓이와 깊이는 각자 다르다. 나에게 오전 시간은 큰 '덩어리'같은 시간이다. 약속때문에 서둘러 외출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없다면 10분, 20분 쪼개지 말고 몇 시간의 온전한 시간을 갖기 원한다. 그 시간동안 해야할 일의 진도를 쭉~ 나가 한 걸음 성큼 내딛기를 원하는 시간이다.
일과를 관찰해 보니 오전 시간이 특히 참 '애매하게 쪼개지기' 쉬웠다.
해야 할 일을 펼쳐놓고 커피타러 왔다갔다, 메일 확인, SNS 댓글달기 등등 다른 일에 잠시, 진짜 '아주 잠시' 한 눈을 팔고나면, 시간은 금방 점심때가 되어 버린다. 점심을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지! 하면, 벌써 하루의 3분의1은 사라져 있다!!
전체를 다 마치진 못해도 중간 단계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힘과 집중력을 쏟는다.
내가 생각하는 그 지점까지 딱! ‘매듭’ 짓고 일어날 때의 쾌감이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큰 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일, 대형 프로젝트 같은 것이어서가 아니다.
작고 개인적인 일상이지만 ‘내가 작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배우 김혜자씨가 출연했던 어떤 드라마 중 이런 대사를 가끔씩 떠올리곤 한다.
애매하게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혹은 어짜피 오전에 다 못 끝내니까라는 느긋한 마음에 웹서핑을 하며, 혹은 허둥지둥 하던 일을 덮어놓고 달려나가는 11시 30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하루의 첫 번째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으로 오전 11시 30분을 산다.
이 시간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도 좋다. 마치 주중 토요일 저녁같은 느낌이다.
오전을 잘 '매듭'짓고 나면, 이미 한 걸음 성큼 내딛은 나를 칭찬할 수 있다.
그럼 더 기분좋게, 더 맛있게 점심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건 아닌 하루가 온다해도,
인생은 살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김혜자씨의 수상 소감>
오늘, 오전 11시 30분을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서도 <오전 11시 30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