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shift) 태세
12시를 떠올리면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순식간에 두 가지 기억이 스친다.
하나는 모형 시계를 만들어 주시던 엄마의 모습.
K-장녀의 운명이라는 걸 알 턱도 없는 나이였으나, 학교 다니는 내내 왠지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그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못 하겠어요'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애 어른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부며 과제며 엄마의 도움을 받아본 기억의 좀처럼 없는데, 유일하게 엄마가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있다. 엄마는 동그랗게 자른 종이 위에 숫자를 1부터 12까지 둘러가며 쓰고, 시곗바늘을 만드셨다. 그저 숫자판 위에 그려진 시곗바늘이 아니라 긴 바늘, 짧은바늘을 돌리면 각각 돌아가는 ‘움직이는 시계’를 뚝딱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바늘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계 보는 법을 배울 무렵 가장 어렵고, 신기하기도 했던 시간이 12시였다.
긴 바늘과 짧은바늘이 겹쳐져서 한 개로 보이고 마는 시간.
다른 시간은 긴 바늘, 짧은바늘 각각의 숫자를 읽으면 되는데, 시와 분이 하나로 합쳐져 버리다니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시간 보는 법이 어렵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겹쳐진 바늘의 모습마저 예쁘질 않아서 12시가 싫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방학마다 그려야만 했던 방학시간표이다. 제법 큰 원 위에 시간을 표시하고 케이크 조각 같이 하루의 일과를 표시하는 시간표. 그 시간표를 그리기 위한 중심은 늘 12시였다.
가장 먼저 12시에 딱! 점을 찍은 후에야 아래 6시, 왼쪽 9시, 오른쪽 3시에도 기준점을 찍고 시간 표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12시는 내 하루의 중심 시간이었다.
살며 보니 하루 중 특히 12시는 참 많은 일상의 변수를 가진 시간이다.
공식적인 점심시간이지만, 밥을 먹을 수도 못 먹을 수도 있다.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먹으며 보내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즐거울 수도, 부담일 수도 있다. 급한 과제를 오전 중에 매듭짓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온전히 나 혼자 있을 공간을 찾아 짧은 자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데이트가 있는 핑크빛 시간이기도 하다. ‘12시에 만난요, 브라보콘~’ 노래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12시는 '여유로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이다.
두 마음 사이의 밸런스가 깨어지면 일상의 밸런스도 흔들린다.
‘식후 커피 한잔’은 벨런스가 깨지기 쉬운 위험한 시간이기도 하다. '커피 한 잔'은 사실 SNS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핑계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따라다니다 보면 커피 한잔 마실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 버리고, 오후의 계획된 일정은 뒤로 계속 밀리며 엉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12시 점심시간을 보낼 때면 마음의 무게 중심을 떠올린다.
정해진 식사 시간을 넘기지 말 것.
특히 '식후 커피 한 잔'의 적정 시점에서 깔끔하게 빠져나올 것.
점심시간의 끝과 오후 일상의 시작점에서는 나는 재빠른 쉬프트(shift)를 준비해야 한다.
어떤 형태이든 좋다.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12시의 공식적인 휴식 시간을 즐기되, 오후의 일과를 놓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긴장감도 잃지 않도록 말이다.
긴 바늘과 짧은바늘이 하나로 합쳐지는, 왠지 신비롭게 느껴지던 그 시간은 그렇게 내 마음의 여유로움과 긴장감을 합쳐놓는 시간이 되었다.
오후 12시를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서도 <오후 12시>가 빛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