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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Oct 03. 2024

<오후 6시30분>

진심 한 스푼

 

나는 몸 쓰는 일에 좀... 서툴다.      

누가 봐도 불안해 보이겠지만,  내 자신 또한 시작부터 엉성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오후 6시30분은 그런 내 몸과 싸우며 보내는 시간이다.      

몸을 써야 하는 대상은 저녁밥상....    

비장하게 표현한 것에 비하면 "풋~" 웃음이 날 정도의 작은 일상이지만, 더 쏀 표현이 있다해도 부족할 만큼 나에게는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결혼 직후 '하루 한끼는 꼭 내 손으로 남편 밥을 지어줘야지' 라는 기특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엄마가 늘상 해 주시던 일이 아닌가. 무엇이 어려우랴.      

세 번도 아니고, 하루 한번 밥상 차리는 일인걸?      

그러나 나는 곧,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쉽게 '입 밖'으로도, '마음 속'으로도 꺼내지 말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쌀을 씻고 계량컵으로 밥물을 맞춘 후,  전기밭솥의 뚜껑을 닫기까지는 가뿐하다.       

전쟁은 그 후부터 시작된다.      


콩나물! '엇? 머리랑 꼬리 그대로 다 무치나? 꼬리는 다듬는 거였나?' 엄마의 콩나물 무침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분명치가 않다. 콩나물 머리는 분명 있었는데, 실같은 꼬리들은...? 

감자조림!  예쁘게 깍뚝썰기를 해 보자. 요리책을 펼친다. 응? 감자를 기름에 먼저 볶으라고? 일단 시키는 대로... 감자는 이내 타기 시작한다. 당황한 나는 물을 급히 부었지만 탄 냄새에 놀라 부었던 물을 다시 버린다.      

그렇다면, 달걀말이! 이건 일도 아니지! '평범하게 말고 치즈를 넣어볼테야.'  흐엉, 달걀물을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 에그 스크램블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치즈를 넣기는 커녕 한 번을 제대로 말아보질 못했다.     

     

우왕좌왕하던 중 시계를 보면, 남편이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온다. 막상 메인요리는 시작도 못했다.      

결국은 그냥 고기 굽고 김치와 김, 엄마가 주신 나물무침 한 접시로 겨우 구색을 갖춘 상차림.     

나는 왠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자꾸 반찬 그릇을 이러저리 옮겨본다....

     





내 하루 중 가장 노동집약적인 이 시간이 나는 힘겹고 답답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엄마는 이런 일을 어쩜 그렇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평생을 해 내신 걸까?      

그제서야 나는 내가 30년이 넘도록 나물 한 접시, 설거지 한 번 하지 않고도, 감.히. 엄마의 귀한 밥상을 공짜로 받아 먹었다는 뻔뻔스런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오후 6시30분은 벗어나고픈 전쟁같은 시간이기도, 뻔뻔했던 내 과거의 반성이기도, 엄마의 고달팠을 노동을 기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복잡한 마음의 시간이다.      


점차 집안 일의 일상에 익숙해 지면서 이 시간을 좀 더 심플하게 넘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본다.     

하지만 배달음식, 밀키드, 반찬가게 이런 방식은 제외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내 손으로 가족의 밥상을 차리겠다는 약속이 자꾸 내 양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까짓것 공언한 것도 아닌데,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한다 한들 누가 알아줄까?...

이렇게 스스로 족쇄가 될 일인가도 싶지만,  이상하게도 '내 손으로 하루의 밥 한끼'라는 이 마음이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따뜻하고 정갈한 '갓 지은' 밥상에 대한 진심. 

가족을 위해 엄마가 보여주신 평생의 마음이, 노동의 시간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스며든 것일까?...


아, 그러니 어찌하랴.

엄마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알록달록 만든 저녁 비빔밥에 이 마음도 한 웅큼 추가해 본다. 

소중한 가족, 곁에 있어 감사한 마음을.

비빔밥을 준비하는 과정도 물론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결딜 만은 하다.      

맛있게, 싹 비워주는 가족을 보며 방금 전까지의 난리법석, 긴장감은 잊게 된다.




그리고 이내 드는 생각... 

'내일은 또 뭐 해먹지?...'   이상한 중독이다.



 



오늘 오후 6시30분을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서도 <오후 6시 30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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