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을 구하는 시간
대만 밀크티인데 이름이 ‘3시15분 밀티크’가 있다.
왜 3시 15분일까? 이 상품을 마켓 진열대에서 볼 때마다 늘 궁금해진다.
누군가에게는 3시 15분이 밀크티가 필요한 시간, 향긋하고 부드러운 차가 그리운 시간이었을까?
3시 30분이 되면 나는 기도 장소를 찾아간다.
집에서는 쇼파옆 하늘이 가득 보이는 창가이다. 밖에서는 그 시간에 있는 장소가 그냥 기도장소이다.
걸을 때면 걸으면서, 카페라면 테이블에서, 마트에선 카트를 끌면서...
이 시간에 나를 기도의 자리로 올 수 밖에 없게했던 기억들은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코로나를 핑계로 1학년을 아주 푹 쉬더니, 어려운 공부를 해보겠다 덤볐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나름 입시생이 된 셈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들이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땐, 나는 분명 '그래, 뭐든 도전해 보는건 좋지, 경험이 중요한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더랬다. 그렇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는 아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조금씩 달려졌다.
코로나 시기라, 온라인으로 라이브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던 덕에 우리집 거실은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원 교실이 되고 말았다. 넓은 거실 책상을 혼자 다 차지하고 공부하는 아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운동화끈을 고쳐 매는가 싶더니, 어느새인가는 슬슬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들은 이런 스파르타식 방법으로 강행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모든 과목을 다 열심히 하지도 않을뿐더러, 문제풀이 욕심도 그닥 없다. 시간되는 만큼만 풀고, 시간없으면 마음 편히 패스다. 달랑 샤프와 검정색 볼펜이 전부. 정리노트, 오답노트 따위는 당연히 없다. 남편말대로 나와는 궁합이 맞질 않는다.
전혀 다른 이런 입시 스타일의 공부가 얼마나 큰 짐이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그 과정을 견디며 공부하는 자체가 그에게는 최선의 노력이었건만,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점심 식사후 오후 수업이 시작할 즈음이면 실시간 수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는 영락없이 졸거나 아예 자기도 해 버린다. 현강수업이었으면 눈에 보이지나 않았을 텐데,,, 온라인 수업이니 내가 원치 않아도 보이고 들리는 걸 어쩌나... 본격적인 잔소리가 쏟아진다.
"선생님이 앞에 계신거나 마찬가지인데, 자고 있으면 어쩌냐"
"친구들 질문하는 소리 안 들리냐"
"이럴 거면 공부는 왜 시작했니? 그냥 중학교 공부나 열심히 하든가, 다다다~~~~"
일회용품 같은 잔소리다.
아들은 '공부는 왜 시작했니, 그만둬도 된다' 라는 말은 졸면서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존감을 건드리는 그 발언에 누군가는 상처를 더 받고나서야 충돌은 끝이 난다.
그 승산 없는 싸움의 시간은 거의 언제나 3시가 넘 시간이었다.
나는 이긴 걸까? 진 걸까?...
어느날 부터인가 3시 30분 전후의 시간이 두려워졌다.
아들을 믿지 못하고 내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의미없는 잔소리로 쏟아내는 내가 싫었다.
더 이상의 잔소리를 멈추기 위해 나는 내 입을 닫기로 했다.
어떤 방식이든 그저 그에게 맡기면 될 것을 왜 내가 끌고서 달리려 하는 걸까?
제발 멈추고, 내가 진짜 해야할 일을 하자.
엄마인 내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오후 3시 30분의 기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는 나오지 않았다.
막상 내 속에서 나오는 기도는 '제가 아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나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내 욕심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였다.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제대로된 엄마노릇 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된 것이다.
아들은 결국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그 후로도 3시 30분이 되면, 나는 기도의 자리로 간다.
아픈 마음 겨우 끌고갔던 그 장소는 그대로 내 일상의 기도 장소가 되었고, 그 시간은 기도를 위한 마음의 알람이 되었다. 제대로 된 엄마 노릇뿐만 아니라, 온전한 내 자신, 내 속의 "선함을 구하는 시간"이 되었다.
3시 30분은 그렇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중에 의미를 찾는 시간이 아니라, 아픔과 간절함으로 애써 내가 만든 시간이다.
사라지지 않는 악한 마음, 이기심, 욕심, 질투, 두려움과 불안, 못나고 약한 모습을 다 꺼내 놓으려고 만든 시간.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죄, 용서를 구하는 시간.
왜 굳이 그런 시간이 필요하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하루의 중간 정산'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매일 하루의 중턱에 이른 시간, 3시 30분이면, 기도의 자리를 찾아간다.
온전한 길에서 벗어나 있다면, 바른 길을 걷게 해 주시는 은혜를,
나만 알고 있는 내 속의 악함에 대한 용서와 선함을 구한다.
향긋하고 달콤한 밀크티 맛은 아니지만, 담백하고 깨끗한 차 한잔을 마신 기분이다.
그 평안한 에너지로 하루의 남은 시간을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온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오후 3시30분을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서도 <오후 3시 30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