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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20. 2024

<토지>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차라리 원망해라


로미오와 줄리엣 같지는 않지만, 

<토지>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맘고생을 하는 커플이 등장합니다.


무녀의 딸 '월선'과 유부남 '용'입니다.

무당의 딸에게도 신기(神氣 )가 있다 믿어서인지 누구든 부부의 연 맺기를 꺼려했나 봅니다. 애통한 마음이지만, 각자의 처지와 운명이 이러하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쉽게 다가가질 못합니다.


그저 깊은 사랑을 마음으로만 간직한 채, 각자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애써 외면하고, 그래도 견딜 수 없이 그리울 때면, 밤중에라도 길을 한 달음에 달려가 보기도 합니다.  


가까스로 만남을 가진다해도 넘치는 그리움과 연모의 정이 무색할 만큼, 마음에는 상처만 남습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마로니에북스,  p.151


용이의 눈과 월선의 눈이 지남천에 끌리듯 합쳐진다.
월선은 울상을 지었다.
'우찌 니는 나한테 원망이 없노'
....

"어느 시 어느 때 니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다. 모두 다 내 죄다.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우찌 니는 나한테 원망이 없노...


'차라리 나를 원망이라도 하지'라는 표현보다 

저는  용이의 이 말이 참 마음 아픕니다.






오히려 나를 원망해 주었으면.... 

실은 저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차라리 원망하는 마음을 쏟아내고 미워라도 해 주었으면... 내가 그 원망을 기꺼이 받아내며 아파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니가 나를 원망해 주면,  내 죗값을 받는 셈이 될 것이니 조금은  죄책감을 덜어 낼 수 있을 텐데...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용이가 '차라리 나를 원망해라'라고 말하지 않고, 

'와 니는 나한테 원망이 없노....'라고 한 말은 고백인 듯 느껴집니다.

'미안하다, 너의 상처가 내 죄이구나... 미안하고 미안하다'



때로는 용서를 구하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회한이 있습니다.

원망하지 않는 상대는 원망조차 하지 않음으로 인해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와 니는 나한테 원망이 없노...'


용서받지 못하는 죄스런 마음은 영원히 풀어지지 않는 멍에가 됩니다. 

그 멍에가 힘겨워도 벗어던지질 못합니다.  원망조차 없는 상대의 침묵을 기꺼이 견디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속죄의 기회가 되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무게가 절절하게 와닿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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