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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05. 2024

<새벽 3시>

밤샘의 길목


나름의 고비이다. 새벽 3시는.


꼬박 밤을 세우느냐, 마느냐하는 밤샘의 길목에 서 있는 시간이라서...   

그전까지 아무리 말짱한 정신이었다고 해도 딱 새벽 3시 전후가 되면 나는 갑작스레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신데렐라의 변신도 아니고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단 10분이라도 새벽 3시를 넘기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시 맑은 정신상태로 돌아온다.     


대학입시를 앞둔 학창 시절 새벽 3시를 넘기면, 거뜬히 다음날까지 밤새워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넘기지 못하면,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어 버리곤 했다.

그즈음부터 나는 이 증상을 자각했고, 다른 친구들도 이런 시간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막상 물어볼 기회는 갖지 못했다. 


지금은 전형적인 early brid 스타일이라, 새벽 3시까지 깨어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지만,      

지금도 여전히 같은 증상이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누군가 그 시간에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늘 비몽사몽간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시간이고, 

그저 내일의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은 이 시간이, 내게는 꿈과 현실을 가르는 터닝 포인트같이 느껴진다.      


사실 새벽 3시는 대부분 잠들어 있는 시간이라,  평소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분명한 이유이다.      

잠들어 버리느냐, 깨어나 있느냐는 내 의지가 아니라, 새벽 3시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가끔씩 이런 새벽 3시의 미스터리를 생각할 때마다 남편이 떠오른다.

이런 시간이 남편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새벽 3시라는 시간처럼, 평소엔 자각 없이 살다가 어떤 길목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Don't worry" 


새벽 3시를 넘겨 맑은 정신을 되찾았을 때면, 문득 자신감이 생긴다.


'밤새울수 있겠구나' , '아직 시간이 있어, 충분해, 걱정 마!' 

사용할 있는 시간이 아직 더 남아 있다는 생각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잠재워 준다.

Don't worry라 말해주는 시간.


남편 또한 그런 사람이다.

내 빈틈이 드러날 때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주고 괜찮다, 잘 될 거다, 걱정 마라... 무수한 위로가 쏟아지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괜찮지 않은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데, 평소 늘 나의 빈틈이 "괜찮지 않았던" 남편이 "괜찮아, 걱정 마"라고 말할 때면, 나는 진짜 괜찮다고 느껴진다.  '그래... 괜찮을 거야. 좋아질 거야.' 


남편의 말 한마디는 요동치던 마음을 마법처럼 가라앉히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강제 종료.


새벽 3시가 마법처럼 나를 잠으로 빠져들게 할 때 나는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가 없다.

무조건 쓰러져 자야 한다.

피곤한 일상이 의도치 않게 이어질 때면, 이를 강제 종료시켜 버리는, 강단 있는 시간이지만,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겠다.     


남편 또한 그렇다.      

좀처럼 NO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남편의 입에서 안 돼, 라는 말이 나올때,  일단 그 낯설음에 멈추게 된다.  


언제나 한결같고 무던하게 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거친 매듭을 만들지도, 깊은 발자국을 만들지도 않고 조용히, 함께 곁을 걷는다.      

때때로 들리는 크고 작은 웃음소리 덕분에 가는 길이 즐겁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잔소리도 없다.      

내 맘대로 오락가락, 때로는 휙휙 지나쳐 혼자 바빠도 간섭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만 건넬 뿐.     


그런데 내가 지나치게 앞서 간다 싶을 때면, 무리하게 몸과 마음을 쓴다 싶을 때면,       

강. 제. 종. 료를 시켜버린다. 

남편의 느. 닷. 없. 는 'NO'라는 말 앞에 나 또한 느닷없이 멈추게 된다.     

새벽 3시의 마법처럼 강제종료되는 느낌이다.


이럴 땐 남편이 원망스럽기보다는 '안전지대'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허용해 주는 남편이 NO라고 말할 때는 분명 득보다는 해가 더 크겠거니 싶다. 


새벽 3시도 안전지대 같은 시간이다.

'오늘 하루 쓸 수 있는 시간은 여기까지! 이제 자야할 시간...!'이라고 지친 몸을 지켜주거나, 공들인 일이 무너지지 않도록 다음 날의 시간까지도 허용해 주는, 그렇게 마음을 지켜주는 시간이니....  

     

내 하루 시간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짧고도 흐린 빛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구나.  마법처럼 나를 지키는 시간, 새벽 3시는 어떤 시간만큼이나 특별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새벽 3시를 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시간 스펙트럼 속에서도 <새벽 3시>가 빛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시간 스펙트럼의 연재를 마칩니다.


24시간을 스펙트럼처럼 펼쳐놓고 보니,  어떤 시간도 저에게 그냥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새벽 3시를 성찰하며 더욱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24시간도 하나하나 귀하고 밝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더욱 빛나며 펼쳐질 저와 여러분의 시간을 응원하겠습니다.

연재글을 읽고 공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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