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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Mar 14. 2024

간단히 국수나 먹자

알고보면 복잡한 국수


“간단히 국수나 먹자”


간.단.히 라니...


그 순간 내가 생각하는 국수는 깊은 맛의 육수, 통밀면, 고기와 버섯, 당근과 호박, 청경채와 파를 고명으로 올리는, 한 그릇에 맛과 영양을 제대로 담아내야 하는 복잡한 음식이다.


                                                                                     그림 : 소리 by 미드저니


결혼하고 밥상을 차리다 보니 세상에 간단한 음식은 없었다.


간단한 메뉴로 생각하고 먹었던 김밥, 잔치국수(혹은 수제비), 햄버거, 비빔밥 등에는 꽤 많은 조리과정과 순서가 있었고,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스킬이 필요했다.


 ‘간단히’라는 말은 철저하게 먹는 사람의 입장만을 고려한 불공평한 표현이다.


이렇게 간단히, 깔끔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그 속에 응축시켜야 하는지, 먹는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불공평함에 마음은 불편했지만, 나는 간단하지 않은 과정과 시간을 쏟아 '간단히' 먹을수 있는 국수를 만들었다. 


 “이렇게 간단히 먹으니까 부담없이 좋네”


 '아, 진짜 끝까지 불공평하구나.'


 “간단하긴 뭐가 간단해~ 한번 만들어 봐봐~~” 

내 노고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을까? 

괜히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 붙이려다 멈추었다.


“좋다”라며 해맑게 웃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오늘따라 눈가 주름이며 흰머리가 눈에 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정말 좋아 하는 눈치였다.


                                                                                     그림 : 소리 by 미드저니


남편의 주름과 흰머리는 어느정도 나의 투영이기도 했다. 

남편 혼자 나이들어 갈 일은 없으니, 내 얼굴에도 저런 세월의 흔적이 있겠구나.


길다면 긴 시간, 이렇게 나이들어 가는 것을 서로 지켜보면서 인생을 함께 하는 존재가 남편이란 사람이구나. 자식보다 남편의 존재가 더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간단한 국수는 역시나 간단하지 않았다.


남편의 미소와 주름과 흰머리, 살아온 세월, 살아갈 세월, 서로의 늙음을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곁을 지킬 것이란 믿음... 이들 모두가 다 포함된 복잡하고도 어려운 메뉴였다. 

그러나 삶의 동반자인걸 어쩌랴. 국수 정도는 언제라도 O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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