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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Apr 03. 2024

꽃보다 설렘

꽃피기 직전


요즘 양재천 산책로는 아슬아슬하여 경이롭다.


벚꽃은 아직 한껏 만개하지 않아 조금은 어설프다.

그렇다고 긴 산책길을 시원스레 휘돌아 감는 싱그러운 초록 터널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나를 경이롭게 하는 것은 나뭇가지마다 볼 수 있는 작은 연두색 몽우리들이다.

정말 보리처럼 작았던 몽우리들이 이제는 곧 터질 듯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산책길을 걷는 내내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싱그러운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볼 땐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 작은 것들이 모양새도 모두 다르다.


이 속에 생명체가 들어있단 말이지.

어쩜 몇 분 뒤에라도 곧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건 아닐까?


이들이 보는 첫 세상은 어떤 느낌일까?

어떤 꽃이 될까?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는 있을까? 어떤 생을 살게 될지 알고는 있을까?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 아니 마음을 상상하며 남은 산책길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반드시 ‘완성’에만 있지 않은 것 같다.

완성 직전의 순간이나 그 과정이 더 설레고 기쁨이 되기도 한다.


여행길 중간에 만나는 풍경들,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를 열기 직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운 사람과의 약속 시간 직전.


완성이나 목표점은 아니지만, 그것에 가까워져 가는 과정을 즐기는 기쁨이 충만하다.

이유는 아마도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길을 가면, 여행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할 것이란 믿음

박스를 열면 선물이 있을 것이란 믿음

주문한 음식을 이제 곧 먹을 수 있다는 믿음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이 반드시 나올 것이란 믿음


완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과정이 기쁘고 설렐 수가 있을까?


지금, 현재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은 잘 될 것이란 믿음, 결국 나는 해내는 사람이란 믿음.

이 믿음이 흔들리기에 불안하고 힘겹지 않을까?



지금 시간, 하고 있는 일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활짝 핀 꽃송이가 아니라,  
피기 직전의 꽃 몽우리들을 기억하려 한다.


분명한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니,

봄꽃을 품은 몽우리처럼 반드시 피어날 것이니,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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