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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물고기 Mar 24. 2024

소산비경?

그.냥. 보고 느끼면 됩니다

2023년 3월 23일 가나아트센터에 ‘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 소산비경’을 보러 다녀왔어요.

민화선생님의 추천으로,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발걸음을 떼었어요.

울림과 감동의 시간이었기에 사진과 기사로 기록해 봅니다.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묵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은 1945년 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당시 한의사였던 그의 부친은 공비의 습격을 받아 돌아가셨고, 그 곁에 있었던 네 살짜리 박대성 화백도 왼팔을 잃었다. 이후 여섯 살부터 육체적 불편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붓글씨를 쓰며 필력을 키우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박 화백은 1968년 23세에 제17회 국전에서 `가을`이란 산수화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화제가 됐다. 이후 8년 연속 입선하면서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얻게 됐다. 1979년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사 주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수묵작업을 기본으로 해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매진, 국내외 미술계에 주목받는 화가로 발돋움했다. 1999년부터 경주 남산에 정착해 `신라인(新羅人)`이라고 작품에 서면 하면서 남산에서 먹으로 생애의 절정기를 맞고 있다. 최근 그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박물관, 이스탄불 마르마라대 미술관, 베이징 중국미술관 등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이에 앞서 그는 호암갤러리에서 대작 100여 점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80년대의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존재감이 점점 부각되는 이유는 역대 화가 가운데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하고 섬세한 감각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평면적인 이미지라기보다는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극적인 울림이 있다. 사실과 추상, 세밀함과 단순함, 강렬함과 서정성, 중후함과 유머러스함 등 양 극단 사이에서 그는 균형을 잡는 외줄 타기를 즐긴다. 때때로 대상과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극단으로 치닿지는 않는다. 양 극단을 적절하게 융합한다. 그래서 구상 속엔 추상이 깃들고 추상 속엔 구상이 엿보인다. 구상과 추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 그것이 그가 평생 지향하고 또한 이룩한 세계다. 그가 평생 지향하고 또한 이룩한 세계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

“서양화가 밝고 어두움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데 반해 동양화는 붓이 품어내는 그 본질을 추구하죠. 오히려 앞으로 색을 쓰는 유화보다 단색조이지만 심오한 철학과 깊이가 들어 있는 먹그림의 농담이 각광을 받을 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먹물의 `스며듦`과 `여백`의 여유로움을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박 화백은 “한국은 신라 때 솔거가 당나라의 밀타성 화법을 전수받아 일찍이 황룡사 금당벽화 `노송도`를 그렸지만 한국에서도 유화보다 선으로 볼륨, 광선과 입체감을 살리는 먹그림이 발전했다”며 동양화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70세 고령임에도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바로 기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평화의 시간은 하느님과 마주 할 때”라며 자신은 매일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그는 이번 개관 전에 나온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2천 호 초대형 작품인 `솔거의 노래`를 꼽았다. “소나무는 나무 중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다. 나는 우리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 자연이라 표현한다”라고 했다. 이어 어릴 적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새들이 진짜 소나무로 착각해 날아들었던` 극사실화가 솔거 이야기가 자기가 화가의 길을 걷게 한 시발점이 됐고 자신의 인생 자체가 소나무와 함께 살아온 삶이었다고 했다.


6·25 전쟁 때(4세) 고아가 됐고 또 왼팔을 잃고 의지할 데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적막하고 고독한 인생여정 속에서 다행히 그림소질이 있어 독학으로 화업을 일궜지만 일생 꿈꿔왔던 이름 석자를 내건 `박대성 전시관`(솔거미술관 내)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박 화백. 그는 그림 앞에서 한 없이 가난하고 겸손했다.


초지일관 수묵화에서 중요한 필선(筆線)을 제대로 살리고 필력을 기르고자 평생 글쓰기에 힘을 쏟아 온 열정만큼 이제는 “후학 양성을 위해도 힘쓰겠다”라고 했다.


`박대성 화풍`은 참으로 독특하다. 사실과 추상이 적절히 어우러져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큰 울림이 그림 속에서 풍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나서면서 어쩌면 그는 솔거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윤희정기자 /저작권자 © 경북매일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을 보면서 “먹은 혼이”라는, 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소산비경’을 보았다.


https://youtu.be/6jnsI-M-2r4?si=feUydF2wT9JbOAdQ

전시회장에서 상영중인 영상

소산 박대성이라는 한국화 거장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전시회의 감동을

가슴에 담고

도록을 구매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마시고 왔어요^^

언젠가 수묵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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