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회사지 사장 하나 아저씨 하나 그리고 이제 막 세상에 던져진 공돌이 둘이 전부인 영세한 회사는 주로 천장에 텍스타일을 붙이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80년대가 그러했듯이 휴무는 일요일뿐, 그것도 완공이 몰리면 예정된 날짜에 맞추느라 사장이 일요일에도 나오라 하면 군말 못하고 나가서 일했다. 그나마 먹는 인심이 좋아 잘 먹게는 해줬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배려가 아니었다. 오전 참, 점심 식사, 오후 참, 저녁 식사는 노가다에 대한 의무였고 그만큼 많은 일을 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요즘은 카페, 음식점을 다녀봐도 내부 천장 마감 공사를 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르꼬르뷔지에가 기능주의에 초점을 두고 만든 거친 콘크리트 공법, 그걸 그대로 느끼고 감상하시라는 주인의 철학이 담겨서 환히 노출한 것이 아니란 걸 이제는 대부분 알지 않을까?
상하수도와 전기 배관이 훤히 드러난 휑한 천장에 나름 색을 칠하고 빌트인 냉난방기를 매달아 최고로 심플한 모습을 연출한 사업장은 사실 잦은 폐점으로 영업자가 바뀔 때마다 원상복구를 하다 보니 철거와 복구에 큰돈이 들어 무조건 기능에 초점을 맞춰 기본 중의 기본 인테리어만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당시엔 천장에 노출된 많은 배관을 감추는 용도로 거의 대부분 텍스타일을 쓸 때여서 일이 넘치도록 많았던 것 같다.
잠깐 과정을 기억해 보면 먼저 양팔 간격으로 수십 개 앵커 구멍을 뚫고 긴 볼트를 박아 내린 뒤 그 끝에 그물처럼 조립할 각재가 고정될 수 있게 브라켓을 용접하였고, 아연각재를 가로 세로 씨줄 날줄처럼 연결하며 수평을 잡은 후 텍스타일을 붙이는데, 각 타일마다 최소한 드릴 구멍 6개를 뚫고 드라이버로 피스를 박아 고정하는 반복적인 단순 노동을 종일 했어야 했다.
작업은 천장과 높이를 맞춘 우마를 밟고 올라가 고개를 뒤로 젖혀 미켈란젤로도 아니고 더군다나 시스티나 성당도 아닌 곳에서 하루 종일 천장을 올려다보며 석고 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했는데, 그 고단함은 천지창조는 고사하고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도 속에 있는 구원받지 못할 벌거벗은 인간 같았다.
같이 일했던 친구는 1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 있다. 그 후 무릎 관절이 시원치 않아 보행에서 약간의 부자연함이 있었는데, 한 달을 채운 월급날 나는 12만 원, 친구는 10만 원 인가를 줬다. 당시 대졸 초임자 월급이 25만 원이라고 하더라만, 막일에 수습이라는 딱지를 붙여 26일 일 시키고는 쥐약 사 먹을 돈도 안 되는 돈을 준 것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친구와 의리밖에 모르던 청춘의 시절, 남도 아닌 친구 사이를 그런 식으로 평가한 새 대가리 만도 못한 업주에게 둘은 동반 퇴사로 소심하게복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