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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Dec 17. 2023

이 소설의 끝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

과정을 만들어가는 중

"아, 참! 나 그 회사에서 일해"


7개월 만이다. A와 서로의 근황을 나누게 된 것은. 


과거에 A는 '그 회사'를 정말 가고 싶어 했다. 그 회사만 다니면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 인사담당자의 경험을 탈탈 털어서 친구의 고민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른 즈음에 무거운 희망사항을 나누던 우리였는데,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다는 근황을 뒤늦게 들으니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서 떠도는 긴 시간 동안, 그 친구에게 '원하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약간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나 보다. 친구의 말 어느 한편에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기도 했노라는 고백이 느껴졌다.


A는 '입사'를 정말 하고 싶어 했다. 일단 입사하기만 하면 걱정이 없다고 했다.

나는 '퇴사'를 정말 하고 싶어 했다. 퇴사하기만 하면 바랄 것이 없다고 했었다. 

바라던 것이 '입사'였던 그 친구와 '퇴사'였던 나는 각각 원하는 것을 이뤘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나니 별 게 없다.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그저 인생 살아가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의 문제가 풀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행이다" "잘됐다"는 말을 하는 동시에, '만약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 결국 이루어지고 만다면, 그 과정은 어때야 할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퇴사를 선택하고 몇 달의 회복기를 지나 지금 다시 무의식 중에 바라는 것은 '안정적인 직업'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목적지로 가는 긴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짧고 긴 시간을 지나면 만족할만한 직업을 다시 갖게 될 것 같다. 그 직업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무엇을 남겨볼까. 


일단, 제일 먼저 이 글이 남겨질 것 같다. 목적지로 가는 과정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를 조금씩 흘리며 누군가에게 이 여정도 꽤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중이니.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남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이 방황은 조금 더 나다운 삶을 살아가보자고 결심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리고 세 번째로는 설렘을 남기고 싶다.  미완에서 완성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기대와 설렘이 아닐까.


이 모험의 답은 미래의 내가 이미 내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미래의 나를 믿고, 지금은 최대한 미래까지 가는 여정의 지도를 잘 그려두자는 생각이다. 


앞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매일 두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가는 성실함이면 충분하다고 되뇌는 시간을 몇 달이나 살아가게 될 텐데,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이다. 그래도 이 끝이 아닌 '과정'을 빚어나가는 것은 현재의 내게 거는 최면이자 미래의 내게 하는 투자라고 믿는다. 이번엔 부디, 정답을 얻고 난 이후의 허탈함에 비하지 못할 만큼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여정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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