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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근주 Jul 12. 2024

안온한 관찰자

5. 책의 독특한 특성

 책이라는 상품은 특이하게도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없다. 음식처럼 소모되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소모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활자저장 수단인 종이의 사용감이 발생하는 것이지 그 책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것의 소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이런 독특한 특성 때문에 오프라인 책방에서 책을 파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니다. 책을 보러 왔더라도 사람들은 책을 쉽게 집어 들지 않는다. 책 보다 더 가벼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서점 앱을 열어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넣는다. 더 저렴하게, 더 편하게 구매하려는 본능을 거스르는 게 쉬울 리 없다.




 북카페라는 복합 공간의 특성상 책만 구매하러 오는 손님은 드물다. 대체로 책을 읽으러 오시거나 음료만 마시러 오는 경우가 많다. 종종 책만 둘러봐도 괜찮냐고 묻는 손님에게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책을 둘러보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동안 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가끔 손님이 어떤 책에 몰입하고 있는지 궁금해 흘끔거리면, 손님들은 대개 추천사를 읽고 있거나 여러 책들 사이를 방황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책을 둘러보는 것을 목적으로 오는 손님들은 온 김에 책을 사가시는 분들이 많다. 방문 목적이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보니 온 김에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드는 것이다. 몇 권을 구매하든 간에 나는 책을 구매하는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음료를 팔 때보다 더 진심이다. 책방에서 책을 구매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들이 귀한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이곳의 판매대에는 내가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 위주로 선정하여 판매대에 진열해 둔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와 시집은 없다. 경영서적도 없다. 심지어 베스트셀러도 잘 없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책을 찾아오신 분들이 헛걸음을 할 때도 많다.

 "이런 책 있어요? 요즘 유행하던데."라고 책 제목을 말하며 특정 도서를 찾는 분들이 종종 있다. '요즘 유행하던데'에서 나는 그 사람이 평소 독서를 즐기지 않음을 캐치한다. 독서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실제로는 모른다. 하지만 유행하니까 한 번 사본다는 말에서 독서가 취미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건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않을까.

 유행하는 책의 대부분은 내 취향과 맞지 않아 판매대에 오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협소한 판매대에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베스트셀러를 갖다 놓기 시작하면 책방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잘 팔리는 책을 둬서 판매량을 높이기보다 책방의 정체성과 맞는 책을 계속해서 두는 것에 무게를 뒀다.

 이런 유행을 좇는 사람들은 찾는 책이 없다는 말에 미련 없이 돌아선다. 다른 책을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문을 나서는 그들의 표정에서 '여긴 이런 책도 없는 건가'라는 괄시가 종종 보인다. 나는 그들의 괄시를 애써 무시한다. 여기에 '이런 책'이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한동안 SNS를 보고 방문을 오신 분들이 부쩍 늘었다. 오랜 시간 이곳이 북카페임을 홍보해 왔는데, 새로운 SNS를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활동하는 애독자 분들께서 감사하게도 귀한 걸음을 해주셨다. 책도 구매해 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건네주셔서 정말 힘든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 단 한 번도 하루에 책을 10만 원치 판 적이 없어서 책방을 하며 그런 손님을 만나보는 게 희망이라는 글을 남겼더니 멀리서 오셔서 책을 10만 원치 구매해 가신 분도 계셨다. 고작 글 하나에 성큼 와주셔서 책을 구매해 준 그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따듯하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도서 판매량은 딱 두 달 만에 제자리를 되찾았다. SNS와 책이라는 상품이 가진 특별한 성질이 만나면 책방은 방문가치를 소실한다는 것을 근래에 들어 알아차렸다.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한 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책방 SNS를 통해 전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책을 알게 된 장소가 아닌 온라인으로 구매해 버리는 것이다. 음식처럼 그곳을 방문해야만 먹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간의 분위기처럼 그곳을 방문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어디에서 주문해도 똑같은 형태로 똑같은 정보를 담은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 도리어 책방의 생존에 칼날을 겨누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SNS로 책 소식을 끊어버리면 정체성이 함께 상실된다. 책 얘기 없는 책방. 앙금 없는 단팥빵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도서가 가진 상품의 특별한 성질 때문에 오프라인 판매가 잘 되지 않는다. 하루에 30권은 팔아야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쁘진 않다'라는 말이 나오는 현실에서, 그것의 10분의 1인 하루 세 권은커녕 한 권도 팔리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다. 사람들은 책방지기가 선별한 도서와 추천서를 무료 서비스처럼 이용한다. 처음부터 구매할 마음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구매를 목적으로 방문하여 추천만 쏙 빼먹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책을 다루는 공간은 시들어갈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할인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책방에서 책을 사야만 하는가, 다양한 영상매체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인플루언서들이 책 추천을 넘어서서 책 요점까지도 정리해 주는 마당에 굳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따라오는 얘기인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작가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독서의 중요성과 책방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날이 떨어지는 문해력과 그와 동시에 따라오는 자기표현의 단순화, 광고와 베스트셀러의 지속적 노출에 의한 편향 독서, 그에 따른 편향적 사고방식은 세상이 점차 살기 좋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늘어나고 있다. 책 안 읽어도 죽지 않는다. 책 안 읽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수 있다. 다만 서서히 야만에 길들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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