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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Nov 02. 2023

안 타던 버스를 타고 만난 감정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해석하기

2019년부터 몰아친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코로나가 너무나 길어진 탓에 위기감이 풀어지던 2022년 반팔을 입었던 날이 더운 6월 주말이었다. 큰 아이는 복이 많은 건지 초중고를 걸어 다녀 고등학생임에도 시내버스 타는 법을 잘 몰랐다. 때마침 차주에 있는 현장학습은 현장학습 장소에서 바로 집결해야 한다는 통지문을 받았다. 사회 생존력 제로에 가까운 큰 아이의 무사 현장학습을 위해 부랴부랴 버스승차 경험을 핑계로 온 가족이 시내버스를 타고 주말을 시작했다. 


항상 차로 편하게 목적지까지 단거리로 움직이던 우리 가족에게 버스 노선은 이곳저곳 종횡무진 날뛰는 망아지 같이 느껴졌다. 분명 시내버스를 승차할 때 목적지를 보고 탔는데 버스는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한참 전, 한옥마을 안내방송이 나오자 신랑이 충동적으로 내리자고 제안을 했다. 생각할 새도 없이 한옥마을에 목적 없이 우르르 하차하고 말았다. 주말 한옥마을은 역시나 사람들로 활기찼고 북적였다. 


전주시민으로 부끄럽지만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경기전'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버스승차와 하차, 충동적 일정에 이끌려 드디어 운명 같은 만남처럼 전주시민이 된 지 13년 만에 '경기전'을 방문했다.


다양한 시민대상 혜택이나 프로그램이 있을 텐데 그런 방면으로 잼병인 나는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다. 초중고와 대학교 시절을 전주에서 지내지 않은 나는 아직도 내가 전주시민이라는 사실이 어색하다. 유난히 사람을 가려 직장 사람들 외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집순이라 전주 구석구석 돌아보며 정을 붙인 것도 아니다. 마음 한편에 타향살이, 이방인이란 어렴풋한 거리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13년을 살아온 전주가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심지어 친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전주 시내만 들어서면 집에 온 것같이 편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이곳 토박이 마냥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전주는 나의 제2의 고향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태어나서 19년간의 유년기를 보낸 고향에 비해 허전한 느낌이 있음은 분명하다. 아직 19년만큼 해를 넘기지 못해서 인지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인지 이유는 불분명하다. 이래서 옛 선인들이 그렇게도 고향에 관한 노래를 지어 불렀던가! 유년기의 기억이 어쩌면 성인이 된 후의 기억보다 더 강렬하게 머릿속에 각인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경기전 입장권 매표를 하려고 보니 전주시민 할인이 있었다. 성인은 신분증, 아직 신분증이 없는 청소년은 학생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신분증을 챙겨다닌 덕에 시민 할인을 받았고, 큰 아이는 학생증이 없었다. 매표소에 계신 분이 우리 부부의 신분증을 확인하시고는 따로 학생증 말씀 없이 당연한 듯 큰 아이도 시민 할인을 적용해 주셨다. 매표해 주신 분의 섬세한 친절과 센스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전주 시민이라는 이유로 오천이백 원을 할인받았다. 오천이백 원에 엄청난 지위와 특혜를 부여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마치 전주가 나라는 이방인을 받아주고 인정해 준 것 같다고 쓴다면 너무 과한 표현인 걸까?        



평소에 하지 않던 시도가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고, 잊고 있던 기억이나 감정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이방인의 헛헛한 감정은 생각지 못한 작은 친절에 녹아내리고, 13년 만에 경기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다시 떠올려보는 과거의 감정은 '과거가 나'가 아닌 '현재의 나'와 만나 그때와는 다른 감정과 생각으로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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