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까지 살았던 5년간의 일본은 아직 일상생활에서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었다. 현금과 신용카드를 섞어서 쓰는 문화였지만, 백화점이나 큰 브랜드 상점들은 신용카드 지불이 가능했지만 꽤나 많은 상점이나 식당은 현금만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신용카드를 들고 다니더라도 꼭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식당이나 이자카야에는 테이블에 놓인 주문 태블릿은 커녕 키오스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직접 점원에게 일본어로 주문을 해야했다. 따라서 메뉴판에 영어나 한국어가 함께 적히지 않아있다면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아야 했다.
지난한 '코로나' 역병이 끝난 5년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일본을 찾았다. 일단 5년만에 다시본 일본의 식당과 이자카야는 5년 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어느 가게나 입구에 키오스크가 놓여져 있었고 주문은 키오스크로 해야 한다. 언어 선택도 가능해서 관광객들도 쉽게 주문을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어가 안되는 관광객들끼리 가기에는 꽤나 허들이 높았던 이자카야에도 각 자리에 주문용 QR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손님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주문용 링크가 뜨는데 거기서 주문을 하면 된다. 음식 사진도 나와있고 한국어로도 번역이 가능해서 관광객 누구나 손쉽게 가능하다. 무엇보다 본인이 무엇을 주문했고 메뉴마다 가격도 알기 쉬우니 덤태기를 쓸 확률도 적다. 엄청난 변화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식당에는 자리마다 주문용 태블릿이 있다. 하지만 QR코드로 주문하는 방식에 비하면 태블릿 비용 등이 있어 솔루션 비용에도 꽤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이런 디지털화에는 후발주자였지만 빠르게 디지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비용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와이프와 오사카에 갔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출출해서 우메다에 있는 한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그 이자카야는 관광객들은 없고 일본 현지인들만 가득했다. 역시 옛날의 그 기억처럼 이자카야에서 담배를 태우며 카운터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왁자지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전형적인 일본의 대중 이자카야였다. 카운터에 자리를 안내받아 앉자 역시 QR코드가 보였다. 첫주문은 항상 그렇듯 마실 것은 무엇을 하시겠냐며 점원이 물어왔지만 그 이후부터는 QR코드로 주문을 해달라고 한다. 와이프가 직접 주문을 하고 싶어했다. 다행히 QR코드 덕분에 와이프는 신나게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메뉴와 사진을 보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주문할 수 있었다.
5년전같으면 쉽사리 일본어가 되지 않는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어가 되지 않아도 누구든 쉽게 주문이 가능하고 일본의 로컬 이자카야도 즐길 수 있다. 생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런 디지털화는 손님의 편의성 증대도 있지만 아마도 인건비를 줄이려는 시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인건비 문제로 일본인 홀직원이 아니라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 홀직원을 써야할 시기가 이 이자카야에도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을 바치며 배웠던 생존 일본어를 써가며 멋있게 주문하는 모습을 와이프에게 보여주고 싶었었는데 거의 일본어는 써보지도 못하고 이자카야를 나섰던 것 같다. '라떼는' 발언이지만 술과 안주가 떨어지면 직접 홀직원에게 주문하던 감성이 있었는데 그런게 없어지니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로컬한 이자카야에서 일본어 한마디 못하는 와이프가 편하고 즐겁게 주문을 하고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그래 이게 맞지' 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