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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Sep 04. 2024

상해 임시정부를 다녀오다

올해 8월 상하이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무더운 날씨에 10일 정도의 길고 빡빡한 일정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다. 막상 현지에 가서 일을 하다보니 하루 이틀 정도는 좀 여유를 가지고 상해 시내를 관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팀원 세명과 함께 간 출장지에서 어디로 관광을 할까 하다가 광복절도 끼어있는데 상해임시정부가 생각났다. 팀원들도 역사책에서만 보던 곳이 궁금했던지라 흔쾌히 찬성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가지 않는 법. 정작 가려고 했던 광복절에는 고객사에서 일이 터져서 가지 못하고 그 다음날인 8/16에서야 상해 임시정부를 갈 수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는 '신천지'라는 상하이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다녀왔다는 걸 파트너사의 중국 사람들에게 얘기하니 요새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서울로 치면 압구정, 신사 정도 되는 곳인가 보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생각보다 상해 임시정부는 정말 뜬금없이 쇼핑몰 옆의 대로변 작은 골목에 있다. 다행히 그 골목에 한국어로 관광지임을 알리는 현판이 걸려있고 매표소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꽤나 한국인이나 중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인지 사람들도 많이 몰려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다.


상해 임시정부에 들어가보면 처음 드는 느낌은 '좁다' 이다. 3층 건물이긴 하지만 실내공간의 폭이 매우 좁아서 정말 답답하게 느껴진다. 관광지인만큼 관광객들이 이동하기 쉽게 정리된 공간임에도 그 답답함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의 서슬 같은 시기에 여기에 숨어지내야 했던 당시에는 이 공간은 잘 정리정돈 되었을리가 없다. 그 당시에 이곳에서 지냈던 독립운동가 분들에게는 훨씬 더 답답하고 좁게만 느껴졌을 공간이다. 


청사 내부는 관광하기 편하게 잘 정리정돈 되어있고,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하던 가구들도 깨끗하게 잘 재현되어 있다. 3층 건물로 되어 있는데 계단이 꽤나 가파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동하는데 문제는 없다. 청사는 연립주택 중에서 한 호만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두 개의 호를 합쳐서 공간을 넓혀 전시공간으로 꾸며두었다. 상해에서 일제강점기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렇게 건물을 나왔고, 지나가는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을 찍어 기억속에 남겨두었다.


상해를 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국에 비해 날씨는 매우 덥고 습하다. 아마 일제강점기 그 당시에도 엄청나게 덥고 습한 날씨였을 것이다. 이런 날씨에 독립운동가 분들은 이 좁고 답답한 청사 내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셨다. 상해 임시정부를 사용했던 기간은 1926~1932년까지인데 이 시기는 그 어느누구도 독립을 생각하지도 못할 가장 암울한 시기였을 것이다. 한 치 앞의 미래가 보이지도 않는 절망의 시기에 이 답답한 공간에서 기약없는 독립을 위해 싸우시는 독립운동가 분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막연하게 상상으로만 누군가의 감정을 떠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TV에서만 보던, 책에서만 보던 이 공간에 직접 와서 느껴보니 그 상상을 뛰어 넘는다. 덥고 좁은 창문조차 높아 해가 들지 않는 이 공간에서 쉴새없이 절망감만 밀려왔을 독립운동가 분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연한 마음이 가득하다. 진심으로 그분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마음 뿐이다. 


팀원들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왔던 것 같다. 출장일이 5일차쯤 되던 시점이고 슬슬 한국음식도 그립기 시작했다.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작은 삼겹살집으로 들어가 각자 소줏잔에 소주를 채운다.


“우리가 지금 여기와서 일이 힘들다고 징징댈게 아니네. 조상님들 생각하며 잘 일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90년전 이곳의 조상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모두 소주를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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