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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Oct 06. 2023

03. 도쿄에서의 최종면접

도쿄신입사원 03

도쿄 면접일정이 잡혔다. 평일 1박 2일 다녀오는 일정이고, 비행기표와 숙소가 정해졌다. 캐리어 끌고 공항 가는 게 아닌, 정장을 입고 직장인 가방 딸랑 하나 들고 공항에 가니 뭔가 있어 보였다. 아직 회사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공항에서 다리도 꼬아보고 어딘가 전화하는 척하며 바쁜 척도 해보며 비즈니스맨 흉내를 내봤었다.


면접은 오후 2시이기 때문에 오전 일찍 비행기를 탔다. 면접에 대한 설렘보다는 그냥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옷가지 하나 가져가지 않고 이렇게 여권만 들고 가보는 것 자체가 어색했고 묘한 두려움도 생겼다. 2시간 남짓하는 짧은 비행 끝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고, 인사팀이 말해준 대로 '나리타 익스프레스'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공항철도 열차를 타고 도쿄 시내로 향했다. 2013년 당시에는 후쿠시마 사고가 있고 2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일본여행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부모님도 처음에 도쿄로 면접을 보러 간다길래 걱정하시긴 했지만 1박 2일이고 또 '초청받아서 가는 융숭한 대접이다'라는 식으로 말씀드리니 허허 좋아하시면서 조심히 다녀오라며 응원해 주셨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 약간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뉴스나 인터넷에서는 '이미 일본인들은 방사능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산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길에서 보이는 일본인들 표정이 다들 표정이 좀 어두운 것 같기도 했다.


열차는 도쿄역까지 갔고 도쿄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본 도쿄역에는 사람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평일 점심시간대라서 그런가? 그리고 출구가 뭐가 이렇게도 많은지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단 인사팀이 도쿄역에 내리면 택시 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회사주소를 보여주고 오라는데 일단 택시 정류장을 찾아봤다. 일본어는 몰라도 그래도 택시모양 그림과 영어는 알기 때문에 택시모양 그림을 쫒아서 가니, 일본 택시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다가가서 택시를 타려고 하자, 내가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문이 턱 열리더라. 뭐지? 자동문인가...? 택시에 타서 앉았는데 택시기사가 나를 보더니, 외모는 일본사람과 비슷한데 일본어를 못해서 외국인인 티가 났는지, 갑자기 뒷문을 만지지 말라고 '노-타치 (No touch)'를 연발하더라. 이거 외국인 차별인가? 진짜로 당해보니 약간 당황스럽네? 약간 골이 당기기 시작하려고 할 때,

곧 뒷문이 자동으로 '턱'하고 닫혔다. 아 자동으로 닫히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는 거구나.... 역시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봐야 해... 회사 주소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니 끄덕끄덕 하면서 택시가 출발했다.


한 20분 정도 달렸을 거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도쿄역과 회사까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에서 광화문 정도 되는 거리로 멀지는 않은 곳에 있었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도쿄 시내의 풍경은 그냥 모든 게 신기했고, 간판에는 뭐라고 쓰여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외국에 왔다는 설렘에 마냥 좋았다.


회사에서 내리자 나나 씨가 1층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맞이해 주며 인사팀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관광지로 일본을 오기도 쉽지 않은데 회사 건물에 들어와서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게 나에게는 한없이 낯설기만 했다. 회사의 보안 게이트를 통과하면서도 내가 관광객으로 온 게 아니라 비즈니스맨으로 온 거다라는 우쭐함도 느꼈다.


인사팀 사무실로 들어가니 회사 뒤로 흐르는 (스미다가 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기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잠시 앉아서 대기하라는 말을 듣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강물에 반사된 빛이 창문을 때린다. 정말 맑고 나른한 오후다.


곧 면접이 시작되었고 약 3차례에 걸쳐서 면접관만 바뀌어 가면서 3시간 동안 면접을 봤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 면접 때 통역을 맡아준 한국인 엔지니어 선배가 통역을 도와주었다. 사실 면접관들만 바뀌었지, 면접에서 물어보는 내용들은 거의 똑같았다. 마지막 면접에는 최종보스인 인사부장(일본은 부장직급이면 한국으로 따지면 임원급에 가깝다)이 들어왔는데, 이미 수차례 반복된 질문들로 단련이 된 터라 인사팀 최고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모든 면접이 끝났다. 잠시 원래 기다리던 대기실에서 기다려달라고 안내를 받았고, 한 30분가량 지났을까, 인사팀 나나 씨와 인사부 과장으로 보이는 눈이 크고 풍채 좋은 분이 들어오셨다.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해주셨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라는 정말 일본에 산다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말하게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의 일본어지만 나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어 수준이었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먼 길을 온 면접자여서 그런지, 저녁에는 인사부장과 인사팀 직원 그리고 먼저 입사했던 한국인 사원분들과 합격을 축하하는 저녁식사가 있다고 했다. 내심 남은 시간은 도쿄 시내를 혼자 돌아다녀보고 싶었는데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알고 보니 이 날 나와 비슷하게 한국에서 도쿄로 와서 면접을 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영업직으로 일본어를 원래 잘하는 친구였다. 나중에 입사를 하고 같은 기숙사에 배정을 받게 되기도 했고, 내가 일본에 넘어가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고마운 친구였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고 저녁식사 자리를 나서기 시작할 때부터 도쿄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회사를 나서니 회사는 고층건물이었지만 역 쪽으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일본 특유의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어 골목골목을 이룬다. 이 골목 사이를 인사팀 일행들을 따라 걷다 보니 한 튀김(덴뿌라) 가게가 나왔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외관의 튀김집이었는데 '일본은 튀김도 이렇게 고급스러운 곳에서 파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입사하고서야 알았지만, 이때 간 가게는 정말로 비싼 곳이었다...)


인사부장, 그리고 그동안 내 면접을 봤던 인사팀 직원들, 이 날 면접을 본 면접동기, 그리고 합격을 축하해 주는 한국인 선배들까지 모두 모여 술자리가 시작됐다. 튀김요리는 코스로 끊임없이 나왔었고, 일본 답게 조금씩 작은 접시에 나와서 금방 음식이 없어지곤 했지만 계속 끊임없이 요리가 나와서 점점 배가 불러가기 시작했다. 맥주와 사케에 점점 취기는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취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렇게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한국인 선배들을 통해  대충 손짓발짓으로 일본어를 알아듣는 척했지만, 술의 힘인지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술의 힘은 참 신기하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끝낸 뒤 나는 회사 근처의 호텔로 들어왔다. 참 긴 하루였다. 갈아입을 옷도 챙겨 오지 못해서 빗길에 젖은 소매와 어깨의 빗물을 옷걸이에 걸어 말렸다. 예상치 못한 저녁식사 때문에 내가 원하던 1박 2일 자유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좀 분위기라도 내보자라는 마음에 빗길에 호텔에 나서서 근처 편의점도 가보고 라멘집에서 라멘도 먹고 들어왔다. 엄청난 피로감에 더 이상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아 1시간도 채 자유를 누리지 못했지만...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왔고,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제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정말 내 인생의 시나리오에도 없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의 사회인 첫걸음을 시작하는 게 맞는 선택인가? 그리고 가게 된다면 일본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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