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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Jan 11. 2024

힘을 뺄수록 원하는 형상이 나타나는 마법

2023년 여름, 이모티콘 클래스를 들었다. SNS에서 점점 성공적인 부업으로 뜨길래 끌렸던 것도 1% 있었지만, 꼭 부업이 안 되더라도 귀여운 캐릭터를 내 손으로 그려볼 수 있으면 일상도 그만큼 귀여워질 것 같았다. 그러나 똥손이라는 사실만 두 달 내내 확인하다가 끝났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미대 출신 친구에게 그림 과외를 의뢰해 친구에게 소정의 금액을 내고 때아닌 미술 과외를 받게 되었다. 

수업 첫 날, 친구는 

“또봄아, 네가 찾아온 그림을 보고 손을 한 번도 안 떼고 선 하나로 그려봐.” 

라고 나에게 주문했다.

‘손을 한 번도 안 떼고?’

“그게 가능해?” 

“우선 해봐.”

‘아니, 학교 졸업하고 그림을 처음 그리는데,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거 아니야?’

예상을 뛰어넘는 요구에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이 하라니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필을 들었다. 사진 속 고양이와 닮지도 않고 딱히 개성도 없는 고양이가 도화지 위에 드러났다. 직선으로 찍찍 그어진 모습이 영 어설펐다. 

'잘 그리고 싶은데 잘 안 되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언제나 첫 결과물은 상상 이상으로 보잘것 없어 실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첫 미술 수업도 그랬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벽', '재능', '한계' 따위가 또 스모그처럼 잠식했다.


문득, 오랜 친구에게 편안하게 배우는 시간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회사에서는 오죽했을까, 나만 들리는 콧방귀가 나도 모르게 픽하고 새어나왔다.


나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무엇으로 쌓아야 할지 모른 채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그랬을까? 주눅든 상태에서 잔뜩 긴장해 '잘해내지 않으면 안 돼!'라는 강박에 시달렸다. 게다가 했던 것을 다시 볼 만큼의 인내심도 없어서 수정도 너무 고역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은 어느 정도 받아드리게 됐지만, 그래도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물어봐도 되나.'

'이걸 물어봐도 되나.'

'또 한 소리 듣나.'

입술을 떼기 전부터 바싹 바싹 속이 타고,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고, 상대가 화를 내거나 날 무능하게 생각할까봐 겁이 났다. 종종 메모를 하고, 스스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 회사만 가면 멍(청)해지는 탓에 메모를 해놓은 걸 잊을 때도 있었고, 이전 일과 연관성을 찾아 해결하는 것도 영 어려웠다.  

내가 버벅거리는 동안 누군가는 나를 싫어했(겠)지만, 그 사람은 쓸데없는 짓을 한 거다. 누군가 날 애써 미워해주지 않아도 내가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가 넘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자기 혐오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달라지고 싶었다.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를 때 숨을 천천히 쉬려고 노력하는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누군가 날 평가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 빌어먹을 인정 욕구의 볼륨을 줄일 수만 있다면, 딱딱하게 뭉친 어깨만큼이나 굳어버린 이 마음을 흐늘흐늘하게 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그런 편안한 상태는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힘을 빼야 채운다는 게 뭔지 체득하게 됐다.

친구는 수업을 할 때마다 

"손에 힘 빼."

라는 말을 많이 했다. 선을 그릴 때 강약을 주면서 그리는 법을 배울 때쯤 되어서야 손에 힘을 빼기도 하고, 주기도 하게끔 유도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한 말은

"손에 힘 빼봐." 

였다. 

친구는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려 하면 매의 눈으로 보다가 

"힘 빼세요."

라고 말을 했다.


손에서 힘을 빼면 연필도 같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질 것 같았지만, 손가락의 각도가 흐트러질 정도로 힘을 빼지 않는 이상 연필이 손에서 빠져나가진 않았다. 오히려 손에 힘을 빼다보니, 몸 전체에 힘이 풀리고,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선을 쓱, 긋게 됐다. 하나 둘씩 쓱쓱, 길게 선을 긋다보니 손에 힘을 주고 그렸을 때보다 수월하게 그려졌다. 시선도 자유로워졌다. 비율을 볼 때는 전체를 봤다가 그리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거기만 집중해서 보며 그려나갔다. 그리고 있는 순간에 빨려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하는지, 그런 잡다한 생각 없이 연필, 도화지, 그리려는 이미지에만 집중해 그리게 되었다.





고양이, 꽃, 사람으로 넘어가면서 점차 능숙하게 손에 힘을 뺐고, 힘이 빠지자 선이 가늘고 둥그래졌다. 둥근 선은 직선과 달리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머리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귀로, 턱으로, 코로 점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다. 


재밌는 일이었다. 꽉 쥐려고 하지 않을 수록, 애써 꾹꾹 눌러 그리지 않을 수록 원하는 형상이 더 눈 앞에 나타났다. 


스케치북을 채워가며 '잘'의 저주도 풀어갔다. 무언가를 '잘'한다 '못'한다보다는 그냥 하고,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그 빈 손에는 모른 걸 모른다고 인식하고, 질문할 여유가 들어왔다. 혼자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편하게 질문도 하면서, 그렇게 한 장씩 그리다보니 처음보다 조금씩 더 나아져 갔다. 


뒤쳐진 것 같아 '잘'하고 싶어서, 그것도 꼭 '누구보다 잘 하고' 싶었던 초조함을 살살 녹였다. 가만히 있어도 타들어가던 시간의 나를 쓰다듬어 주며, 성과가 전부처럼 느껴지는 사회 생활마저도 그냥 그런 선긋기의 과정 끝에 성과가 하나 있는 거라고, 온기는 있지만 유별나지는 않은 위로를 건넸다.


앞으로도 목표 때문에 두 손에 힘을 불끈 쥐는 짓 따위는 안 할 거다. 그저 도구를 쥘 정도의 힘이라면 이미 충분히 힘은 준 셈이니 힘은 그만 주고 슥슥 선을 그으려 한다.

꼭 쥐려 할 수록 그리기도 어렵고, 오래 그릴 수도 없다. 오히려 힘을 빼는 편이 조금 어설플 수는 있어도 그리려던 대상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도화지 위에 나타난다. 

날카롭게 신경을 집중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목표에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하면서 여유롭게 오래 이어나가다 보면 돌아 봤을 때 그럭저럭 볼만할 그림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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