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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Jan 18. 2024

돈이 텄지 성향이 텄냐고요!

돈이 텄지 성향이 텄냐고요!

"나는 직업으로 돈 잘 벌긴 그른 것 같아."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앉아서 아빠에게 푸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마치 때를 노리셨다는 듯, 

"맞아. 어차피 너는 문과고, 네가 했던 일이 전문성을 증빙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거나 그런 거도 아니라서 회사도 너한테 기대하는 거 없고, 언제든 바뀌어도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직장에 스트레스받지 마."

라고 위로인 듯 위로 아닌 위로를 투척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설명을 조금 더 보태자면, 우리 가족은 다 이과 출신이다. 다들 차가운 이성이 더욱 빛날 수 있는 분야로 가서 전문 자격증이 하나 이상(!)은 있으며, 그로 인해 나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쉽게 증빙해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떤 업종이든 사회생활은 거지 깽깽이지만 확실히 구직 시장에서는 나보다는 1mm 정도 나은 상태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업종 별 임금 차이를 보면 인문계는 애당초 서럽다. 뉴스 조금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굵직한 대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 소프트웨어 등이 많고, 하청도 다 그쪽 관련이 많다.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그쪽이 더 많을 수밖에 없고, 절대적인 양은 언제나 질을 향상하기에 연봉 범위도 더 다양할 것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추측해 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따금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지금의 내가 17살의 내가 서 있는 어느 벽장을 팡팡 치면서 

"문과반 고르지 마! 수학, 과학 싫어도 이과반 골라! 제2외국어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본어 골라도 돼! 어차피 외국어는 학원에서 반년만 바짝 하면 기초 회화는 할 수 있어! 굳이 대학 가서 안 배워도 돼!"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문과 갔어도 현실에서 좀 더 타협하지 그랬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회사는 생활비 버는 공간이고 자아실현은 회사에서 번 돈으로 하는 건데, 네가 너무 순진한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모르진 않아서, 문과에서 노려볼 수 있는 고연봉 분야를 생각해 보긴 했었다. 예를 들면, 금융권이나 법조계 같은. 하지만 그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가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부터 상상이 되지 않았다. 딱 떠오르는 이미지인 옷차림부터 숨이 턱 막혔다. 정장류를 매번 입고 출근한다고 생각만 해도 *'숨 참고 러브 다이브'가 아니고 숨 참다가 다이(die)할 것 같았다. 

(*아이브 노래 '러브 다이브(LOVE DIVE) 가사 중, '숨 참고 러브 다이브'라는 가사 참고)


그래서 이런 강렬한 직감을 외면하고 취준을 했다간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 같아, 마음을 접고, 돌고 돌아 궁금해했던 콘텐츠 제작 분야에 몸담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정글이었고, 나는 천둥벌거숭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다. 회사와 나 사이의 교집합이 넓어지고, 좁아지고 가 반복되며 회사의 고단함이 월급을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으려 할 때마다 '성향이 다 뭐라고 그놈의 자아실현 따위 일로 하지 않고 내돈내산으로 해야 하는 거였어.' 생각과 함께  공부해서 '사'짜가 될 걸 그랬다 보다, 하고 나의 성향에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경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돈이 더 무섭고, 지금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며 후회에 아쉬움이 더해지기도 했다. 부동산과 주식 책을 펼쳐보고, 채권이니 ETF니 연금저축보험이니 등등 금융 상품을 낑낑대고 들여다보면 금융상품에 투자할 금액이 노동에서 마련되기 조금 더 수월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 성향을 믿고 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왔다는 것을. 돈을 벌기 위해선 일부는 내어주어야 하는 건 맞지만 전부를 속여가며 돈을 버는 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것도 하루에 8시간(이상)씩 주 5일 이상을 속인다는 건 적어도 내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수긍해 주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가진 성향이 세상의 연봉 서열 표에서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위치에 있더라도, 내가 지금 당장 쥐고 사냥을 나갈 수 있는 도구가 돌도끼일 뿐일지라도, 우선은 수렵과 채집이라도 하고 있기로 그리고 아주 약간만 수확한 날이라도 크게 기뻐해주기로 다독여본다. 


그럼에도 돈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을 순 없을 거라 휘몰아치는 현실에 괴로워질 때면 '정말 내 성향대로면 돈은 튼 걸까?' 하는 서글픈 질문이 때때로 물음표가 되어 마음의 호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올라오기도 하겠지만 그렇대도 내 성향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조직에 들어가서 벌 수 있는 돈의 분야가 텄다고, 내 성향마저 텄다고 믿으며 삶의 동력을 꺼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쨍하고 해 뜰 날 올지 안 올진 몰라도, 오늘의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다 보면 또 혹시 알까? 재밌는 일이 있을지. 그렇기에 내 손때 묻은 돌도끼로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시도해 본다.


돈이 텄지 성향은, 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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