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에휴…….”
“이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응? 왜 이렇게 끙끙 앓어?”
“끙……, 아이고……, 끙……”
“진짜 아픈가 보네. 계장님~ 계장님! 여기 87번이 많이 아픈가 봐요!”
“87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근무자가 달려와 상태를 살폈다. 축 처진 몸에 손이 닿자 소스라치듯 비명이 솟구쳤다.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는 울음에 가까웠다.
섣부른 손놀림을 자제한 직원은 바로 의료과로 연락했다.
의료과 직원이 도착하고 몇 가지 검사와 진료가 진행되었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서는 안 되겠습니다. 외부병원으로 이송해 정밀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수용자의 도주 방지를 위한 병원 업무 지원에 투입되었다.
입원 전 그녀의 소란은 고관절 골절 때문이었는데, 높은 염증 수치로 인해 수술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항생제와 해열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은 식을 줄을 몰랐고, 창백한 얼굴의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얀 백발과 틀니 없이 드러난 잇몸 그리고 작은 체구는 본 나이보다 훨씬 더 호호 할머니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더 많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였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조차 포기할 수 없어 시체를 훼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잔인했던 여자가 지금은 병상에 의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몸의 도주를 막기 위해 수갑과 전자발찌, 그리고 교도관이 24시간 곁을 지키고 있었다. 30년의 형을 받아 10년을 살고 난 살인자는 그렇게 6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간병인의 손을 빌어 식사를 하고 있는 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떤 마음으로 지난 삶을 돌아보고 있을지, 옥사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인생 말년을 알았대도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지, 돈이 주는 허망함에 가슴을 치고 있을지,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 망자에게 노잣돈은커녕 반지 하나조차 쥐어주지 않은 것을 미안해하고 있을지……. 대답 없는 질문에 빠져들고 있던 나는 간병인의 말소리에 의해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휴~ 저런 사람들은 엄청 무서울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
그녀의 식사를 도운 간병인이 식판을 내놓으며 중얼거렸다.
간병인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이 정확하게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개인 정보 보호 문제로 어차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맥락상 ‘저런 사람들’이란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을 뜻했을 것이라 짐작한 탓이다.
“범죄자를 돌보는 것이 피해자한테 미안하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나는 그냥 내 일을 하는 것뿐인데요. 뭘!”이라는 시원한 대답을 돌려줄 것만 같았다. 나중에 죄명을 얼더라도 놀라기보다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아이고…… 참…… 인생사가……’라며 딱한 눈빛을 보낼 것만 같았다.
실제로 오가지도 않은 대화를 통해서 나는 간병인과 공범이 된 것 같은 든든함을 느꼈다. 가해자의 몸을 돌보는 일과 가해자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범죄자 심리 상담을 하면 피해자한테 미안하지 않아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냥 내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라고 대답하면 될 터였다.
내친김에 또 다른 질문까지 이어가고 싶어졌다.
“좀 전에 말씀하신 ‘저런 사람들’이 혹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녀의 신상 정보에 포함되어 있었던 ‘조현병’이라는 세 글자가 못내 마음에 남아 맴돌고 있었다. 그 생소한 질환명 앞에서도 간병인이 나와 한마음일지 궁금했다. 그녀를 이상하거나 무섭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다. 증상이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 눈앞의 환자는 지극히 평범하니까. 굳이 이상한 점을 꼽으라면 코에 꽂힌 산소 호흡기를 반복적으로 빼내는 행동 하나가 전부였다. 수용 생활 중에도 다른 사람의 간식을 제 것인 것처럼 먹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백발의 노인이 한 이런 행동은 차라리 치매라는 진단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질환이 그녀의 삶에 언제부터 끼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로 초기 성인기에 발병한다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사건 이후인 50대일지도 몰랐다. 가해자일지언정 정신적 외상을 입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면이었으니 말이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만 껌뻑이고 있는 인생에 대해 어떤 대화라도 시도해 보고 싶은 순간이 밤 근무를 끝낸 후에도 이어졌다.
며칠이 지나 다시 병원 근무를 갔을 때, 나는 간병인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반말로 그녀를 대하며 기저귀를 가는 내내 간병 대상자를 나무라고 비웃었다. 배설물의 냄새가 고약하다거나 몸이 무겁다는 것과 같이 환자의 의지와는 무관한 이유들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부당한 야유를 받아내는 그녀는 간병인의 손에 의해 이리 돌려 눕혀지고 저리 돌려 눕혀지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정신병자래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겠어요?! 뭔 죄를 지었는지 몰라도 미쳐서 그랬으려나…….”
불편해하는 내 시선을 의식한 간병인은 멋쩍은 듯 웃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휴~ 그래도 내가 반말은 안 해야지…… 미안해요.”
그리고 나에게 사과를 건넸다.
‘범죄자’라는 정체성 앞에서는 너그러웠던 간병인이 ‘정신병자’라는 정체성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간병인은 그녀의 범죄 내용을 멋대로 정신질환과 연결 지었다.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던 그녀가 수치심을 감당해야 했던 이유가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하다.
전체 범죄자의 1%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신장애자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정신 장애’라는 말 한마디가 범죄의 다양한 요인들을 삼켜 버렸다. 성급하게 내뱉어지는 낙인의 말들이 질환자체 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되어 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위험할 것이라는 편견이, 나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이, 낫지 않는 병이라는 편견이, 불쾌하고 격리되어야 한다는 편견이,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정신장애자들을 방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치료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일부 환자들이 저지른 강력 범죄는 더 강력한 편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병인은 밤새 코를 골며 환자보다 더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드르렁드르렁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병실의 적요를 깨우고 있었다. 그 무심한 요란 탓인지 환자는 잠이 완전 가신 눈빛으로 멀뚱멀뚱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에 간병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어땠어요?”라고 물으면 울음을 터뜨려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간병인을 일으켜 세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당신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당신은 정신질환에 대하여 너무 잘못 알고 있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것은 상상이 되어 2023년 개최된 정신질환 합창 경연 대회 장소로 간병인과 나를 이끌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슬로건이 무대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쬐는 조명은 검은 바지와 하얀 상의를 갖춰 입은 공연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전주가 울려 퍼지기 전의 고요는 대회 참가자들도, 관객석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휘자의 손이 서서히 움직이고 노래가 시작되자 긴장감은 이내 흥겨움이 되고, 감동이 되어 공연장을 매웠다. 6개월간의 대회 준비 기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자, 눈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정신질환자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세상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약속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간병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 우리도 함께 합창했다. 이것으로 정신질환자인 그녀와 간병인도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