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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ul 07. 2024

사랑에 대해 읊조리는 그녀와 그. (feat. 슈만)

R. Schumann | Op.48 & Op.42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유난히 슈만의 곡을 들을 기회가 많은 것 같다. 슈만을 좋아하는 나로선 연주 레퍼토리로 슈만이 선택되는 일이 느는 것에 대해 반가울 따름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쉬운 연주를 경험하는 일도 덩달아 늘어나기에 한편으론 슬프기도 한 양가감정이 들지만… 어쨌든 슈만 곡이 연주된다고 하면 기쁜 마음이 우선하여 든다.


이번 공연은 <그녀와 그>라는 주제로 소프라노 이명주, 테너 김세일, 그리고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와 ‘시인의 사랑, Op.48’을 들려주는, 슈만의 가곡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앞서 베이스 연광철 선생님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님의 슈만 ‘시인의 사랑’ 연주를 매우 만족스럽게 관람하고 온 바가 있어, 두 연주회의 각기 다른 매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연장 안에 착석하여 공연 전의 분위기를 살펴보는데 오늘은 왠지 초대되어 온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관크를 제대로 경험하겠구나 싶은 슬픈 예감이 잇따랐다.(정말 초대 손님들이 많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날 실제로 관크에 혹독히 시달리기는 했다.)


1부의 시작은 조재혁 피아니스트 솔로의 '아라베스크 Op.18' 연주로 이루어졌다. 이전에 수차례 좋은 연주를 들려주어왔던 조재혁 님이기에 내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연주였고, 입에 맞지 않는 아페리티프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 화사한 진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이명주님이 등장하여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노래하기 시작하였는데, 앞선 아페리티프의 맛이 떠오르지 않게 해주는 감미로운 요리와 같았다. 첫 번째 곡의 가사부터 너무나 깊이 공감되어 마치 내 얘기인 양 즐겁게 들었으나 결국 ‘그녀’는 ‘그’와의 결혼에 성공했으니 그때부터는 남 얘기 듣듯 들었다. 하하. 그 여인에게는 행복한 삶이었을 테지만 나의 기준에서 바라보기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만 모든 것을 건 생애였던 것 같아 그녀의 이야기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주님의 노래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훌륭한 노래에 풍부한 연기까지 더해져 특히 초반보다는 중반부,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노래하실 때 더욱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2부의 시작 역시 피아니스트 솔로의 '헌정, S.566' 연주로 이루어졌는데 이 또한 1부 솔로와 같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피아노 솔로 후 곧바로 김세일 님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시인의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슈만의 가곡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시인의 사랑’을 듣고 난 후였던 만큼 무척 좋아하는 연가곡집이기에 감정 이입도 더욱 잘 되었고, 김세일 님의 훌륭한 노래 덕분에 듣는 내내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연광철 선생님의 홍삼캔디 향 나는 묵직한 ‘시인의 사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젊은 멋쟁이 ‘시인의 사랑’이었다.


비록 두 번의 반주 모두 내게는 다소 아쉬움을 전해주었으나 두 번의 노래 모두 황홀감을 선사해 주어서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다. 다만 앙코르 때에는 관크가 더욱 심해져 아름다운 노래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였으나 무대 위 연주자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자 끝까지 자리에 남아 견뎠다. 소프라노 이명주님, 테너 김세일 님의 노래를 이보다는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기회가 머지않은 미래에 있기를 바란다.


커튼콜 때 담아본 무대 위 연주자들의 모습.




테너 김세일이 노래하는 Robert Schumann의 Dichterliebe(시인의 사랑) Op. 48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Diana Damrau가 노래하는 Schumann의 Frauenliebe und Leben(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이명주님이 노래하는 버전은 없어서 아쉽지만 또 다른 훌륭한 소프라노의 버전으로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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