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vořák | Symphony No.7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거 야단 났다.
아무래도 본인은 학원 강사라는 본업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처지라, 무슨 주제가 되었건 글을 쓰는 일이란 계획보다 훨씬 뒤로 밀리기 일쑤이기에, 공연 후기 같은 것들은 나중을 위해서 보통 공연을 다 보고 퇴장한 후에 짤막하게나마 단상을 속기해두는 편이다. 그런데 이 날은 공연 직후 누군가와의 저녁 약속이 있어서 단상을 적어두는 것을 깜빡했고, 그 후로 한 달이 넘게 지나버린 지금,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렇지만 기억의 파편들이 분명 뇌 여기저기 어딘가에서 유영 중일 것이므로 그날 하루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며 뇌 내 호수 위를 떠돌아다니는 파편들을 채집해 보도록 하겠다.
이번 공연은 국립심포니의 공연으로 Leoš Svárovský(레오시 스바로프스키) 지휘, 그리고 첼리스트 Jan Vogler(얀 포글러)의 협연으로 이뤄졌는데, 특별한 점은 서곡으로써 작곡가 전예은의 <음악 유희>라는 곡의 초연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그녀의 곡은 익숙한 여러 곡들의 변주를 반복하면서 낯설고 새로운 음악으로 나아가는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기존의 곡들이 새로운 현대의 소리와 끊임없이 섞이고 얽히며 새로운 하나의 곡이 창조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우리의 세상이란 기존의 것들을 익히고 학습하여 그를 토대로 새로운 것들을 얹어 서로 융합, 변형, 진화시켜 재창조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온고지신(溫古知新)’이라는 말이 딱 떠오른다.
성공적인 초연을 마치고 객석에서 연주를 감상하던 작곡가가 벌떡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자신의 창작품이 대중 앞에 첫 공개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그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분명 그 기분에는 감격, 긴장, 설렘 등이 들어있을 테지. 나도 언젠가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물론 나 역시 이곳 브런치에 활자로 이뤄진 나의 창작품을 내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정식으로 대중 앞에 완성품으로써 공개하는 경험의 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으니 언젠가 나도 그러한 순간을 얼싸안을 수 있길 새삼 바라본다.
<음악 유희> 연주를 마친 후, 첼리스트 얀 포글러가 무대 위에서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의 첼로 협주곡, Op.85을 연주하였다. 첼로 협주곡의 경우 넓은 콘서트홀에서는 대개 첼로 소리가 묻히는 경향이 있어서 (그리고 엘가 첼로 협주곡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 공감할 텐데, 모 연주자의 버전에 대한 감상이 너무나 강력해서) 좀 아쉬운 때가 많은데 얀 포글러의 첼로 소리는 오케스트라에 지지 않고 또렷하며 힘차게 공연장 안을 울렸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엘가 첼로 협주곡에서 기대하는, 멜랑콜리와 행복, 희망이 한데 뒤섞인 복잡하고도 깊은 서정성은 아쉽게도 잘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삶에서 깊은 우울의 터널을 지나 본 적 없는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주자의 개인적인 삶이야 당연히 나로선 알 길이 없으니 그저 객석에서 들리는 대로 느낀 바를 썼을 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엘가 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눈물 한 방울 글썽이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어진 2부에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7번이 연주되었다. 국립심포니의 공연을 여러 번 다니면서 느낀 점은 협연자가 함께 하는 연주와 국림심포니 단독으로 하는 연주의 컨디션이 제법 다르다는 점인데, 이번 공연 역시 1부 엘가 첼로 협주곡보다 2부의 드보르작 교향곡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독창적이며 서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시간 내어 공연장을 찾는 관객으로선 1부, 2부 할 것 없이 모두 다 좋은 연주를 들었으면 좋겠다만… 그래도 종국에는 만족스러운 감상으로 공연장을 나설 수 있으니 다행이다. 체코 태생의 플루티스트이자 지휘자인 스바로프스키는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양에서 묘하게 드보르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건강하고 열정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제법 아이같기도 한 분위기가 그의 연주에도 고스란히 배어있었고, 객석의 감상자인 나로 하여금 억지로 과잉된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내면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감동의 잔물결을 자아내었다. 표현이 좀 그런데, 과잉 감정 후 남은 여분으로 지저분해지는 일 없이 딱 감동만 안고 나갈 수 있도록 한 연주였달까.
이전 글들에서도 몇 번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드보르작과 그의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그의 음악에는 마음을 건강한 방향으로 고취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한 그의 음악을 이러한 호연으로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이번 연주회의 포스터에는 붉은 몸의 두 사람이 마치 빵 반죽처럼 서로 뭉쳐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작가 자신의 ‘슬픔’에서 ‘위로’를 통해 ‘행복’으로 나아간 경험을 그려낸 <Emotion Elevation>이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 동자동휘가 해당 작품에 대해 직접 남긴 코멘트를 아래에 덧붙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창작의 열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음악에 녹여낸 드보르자크. 그의 교향곡 7번을 들으며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난겨울, 나는 슬픔과 암담함의 근원을 찾아 헤맸고, 마침내 봄처럼 새로운 감정들 ‘위로’를 마주했다. 그렇게 나의 작품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 서로 이어진 것만 같았다. -작가 '동자동휘' (출처 :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