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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Oct 26. 2024

[24] 런던 소호에 울려 퍼지는 녹턴

런던여행기_소호



나는 밤 시간에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일찍 자는가 하면 그것 또한 결코 아니다. 취침 시간은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늦은 편이지만 밤이 되면 잠옷 차림의 편안한 상태로 집 안에 있는 것을 극히 선호하는 성향이어서, 펍과 맥주의 나라인 영국을 여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저녁 늦은 시간에 그 유명한 소호 거리를 돌아다닌다거나 맥주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거나 한 적이 없었다. 이쯤 되니 내가 너무 청학동 훈장님처럼 런던을 즐기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여 오늘은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니만큼 ‘소호’라는 곳을 한 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음주는 할 생각이 없기에 아마 별다른 밤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맥주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맥주 애호가들에게 미안하지만 소신발언합니다.)


창 밖 구경을 할 겸 나이츠브리지 구역에서 소호 구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2층 버스에 올라탄 나는 폭신한 패딩점퍼에 폭삭 파묻힌 채 까만 밤하늘 아래에서 화려한 조명들로 컵케이크 스프링클처럼 반짝이는 런던 풍경을 가만히 구경하였다. 아침부터 종일 지독히도 걷고 또 걸은 하루여서인지 지금 이 순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최고의 선택은 별 게 아니라 이렇게 버스에 앉아 창 밖을 구경하는 일에 있음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 최고의 선택지를 두고 나는 곧 버스에서 내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곧 끝날 호사(?)이기에 더욱 달콤하고 귀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층 버스 안에서



버스에서 약 20분간의 호사를 누린 후 하차한 나는 번화한 거리를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Lush(러쉬) 매장으로 향했다. 러쉬 제품은 한국에서도 너무나 쉽게 구매할 수 있어서 굳이 런던에서 러쉬 쇼핑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때마침 챙겨 온 로션이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영국에 갔으면 러쉬 쇼핑을 해야 한다고 한 마디씩 거들어서 어쩌다 보니 러쉬를 방문하게 됐다. 내가 방문한 러쉬 옥스포드 스트리트점은 플래그십 스토어로, 매장 규모도 크고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점 한정 제품도 판매하고 있어, 비록 로션 하나만을 사기 위해 방문했지만 혹시나 함께 살만한 좋은 제품이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둘러보도록 만들었다.


매장을 조금 둘러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직원 한 명이 내 곁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감시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바짝 붙어 내내 쫓아다니기에 결국은 혼자 편히 구경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쇼핑 조언을 요청했다.


(나) “모이스처라이저(로션)를 찾고 있는데 제게 적합한 제품을 추천해 줄 수 있나요?”


그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매우 열정적으로 내게 피부 유형, 평소 기초 스킨케어 루틴, 메이크업 방식 등을 자세하게 묻고 난 후 두 가지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그와의 오랜 상담 끝에 나는 그가 추천한 두 제품 중 좀 더 밀도가 높고 기름진(?) Skin Drink 제품을 선택했다. 그는 제품 추천에서 멈추지 않고 피부 관리에 대한 그의 철학을 내게 열심히 설파했다.


(직원) “사람들은 대개 피부에 너무 많은 제품을 발라요. 매우 지나치죠. 우리의 피부는 그렇게 많은 제품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많은 성분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세안 후 토너, 로션 이 두 가지면 충분해요. 사실 나는 로션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나 역시 피부든 무엇이든 몸에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더하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었기에 그의 가치관에 동조하였고 그래서인지 그는 신이 나서 더욱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였다. 성실한 직원인 그의 도움으로 나는 성공적인 로션 쇼핑을 마치고 매장을 나왔다.


런던 소호의 LUSH 옥스포드 스트리트점


LUSH Spa Oxford Street, London, UK


런던 소호의 LUSH 옥스포드 스트리트점



왜 진작 소호에 와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소호의 밤은 매우 활기차고 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소호에서 조차도, 역시나 술을 마실 생각이 없는 내게는 엉덩이 붙이고 몸을 녹일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밤이 되면 집에 있어야 하는 성향이 몸 깊숙이 밴 사람이라,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더라도 이 시간에 밖에 나돌아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몹시 피로했다. 나는 구글맵을 뒤지고 또 뒤져 가까스로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커피숍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로 스타벅스. 역시 세계 어디에서든 만만한 게 스타벅스인가 싶다. 기왕 런던 스타벅스에 방문했으니 에그노그라테를 주문했다. 에그노그 라테는 에그노그(Eggnog)라는 크리스마스 음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메뉴로, 달걀과 우유를 기반으로 만든 베이스에 에스프레소와 향신료를 더한 달콤한 커피 음료이다. 아무래도 대중의 입맛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인지 에그노그의 진한 맛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거의 시나몬파우더를 얹은 바닐라라테에 가까운 맛이긴 했지만 몽글몽글 하얀 밀크폼 아래 놓인 달달한 우유는 따뜻하고 포근하여 지친 방랑자의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놀랍도록 멋지고 매력적인 도시 런던과의 작별을 앞두고 시원섭섭한 감정이 종이컵 안의 에그노그라테처럼 넘실넘실 일렁인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 커피숍 안에서 그저 덧없이 죽치고 앉아있는 나였다.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소음들이 한데 뒤섞여 하나의 야상곡을 만들어내어 이 덧없는 밤의 시간을 물들이고 있었다.


스타벅스


알록달록한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시즌 컵.


거리의 밴드.


어디든 연말 분위기가 물씬!






*런던 소호(Soho) 지역 : 런던 시내의 중심지 중 하나로, 독특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번화가이다. 특히, 유흥가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 밤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런던 여행 시 뮤지컬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러쉬(LUSH) : 영국에서 시작된 수제 화장품 브랜드로, 신선한 재료와 자연친화적인 성분을 사용하여 제품을 만든다고 소개하고 있다. ESG 경영의 선두주자라고도 할 수 있는 러쉬는 처음 설립된 1995년부터 꾸준히 자신들의 경영 철학을 고수하며 질 좋은 제품으로 전 세계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에그노그(Eggnog) : 달걀, 설탕, 우유, 크림, 육두구, 계피를 조합하여 즐기는 서양의 겨울 전통 음료이다. 럼이나 브랜디, 버번 등을 추가하여 칵테일로 즐기기도 하고, 커피를 더하여 에그노그라테로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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