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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Oct 23. 2024

[23] 런던 타워 브리지 위에서의 고찰

런던여행기_해로즈 & 타워브리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을 빠져나와 나는 엄마의 심부름을 이행하기 위해 박물관 근처의 Harrods (해로즈) 백화점으로 향했다. 런던에 간 김에 예쁜 지갑을 하나 사다 달라고 요청하셨기 때문이다. 런던의 Knightsbridge 지역에 위치한 해로즈백화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또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백화점이기에 자칭타칭 향수 마니아인 나는 한국에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하우스의 향수 혹은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라인의 향수들을 이곳에서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들뜬 채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외벽에 세로로 수 놓인 선명한 노란빛의 일곱 글자 ‘H A R R O D S’는 멀리서도 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며 거리의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공고히 하였고, 그 일곱 글자 주변으로 건물 외벽 전체를 덮은 노란 조명 장식은 안 그래도 온갖 건물들과 그 조명들로 낮처럼 환한 그 밤거리 위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하지만 요란하게, 거리 일대를 낮처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방문객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 해로즈 백화점의 문을 열고 드디어 들어섰을 때 느낀 첫인상은 어이없게도 ‘사람이 너무 많다!’, ‘혼란스럽다’였다. 연말 특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주말마다 이토록 붐비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폐쇄된 한 공간에 온갖 상품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빈 틈 없이 꽉꽉 들어차있는 그 모습은 이 공간 안에 어쩌면 Adele(아델)이나 Ed Sheeran(에드 시런) 정도 되는 인기 팝스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흥분을 주체 못 한 채 구름 떼처럼 몰려든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래도 기왕 해로즈에 왔으니 구경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조금 기웃거려 보다가 금세 이런 정신없는 공간에서는 도무지 편안하고 즐거운 쇼핑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의 심부름만 신속히 수행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박차고 나오자마자 살갗의 숨구멍으로 일제히 밀려 들어오는 찬 바깥공기가 그리도 신선하고 상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또한, 엄마로부터 받은 숙제를 드디어 완료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해진 것도 한몫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이곳저곳을 홍길동처럼 누비고 다니느라 너덜너덜 한없이 초췌해진 몸뚱이를 이끌고 타워브릿지로, 또다시 순례의 발걸음을 뗐다.


런던 해로즈 백화점 그리고 나이츠브릿지 구역.




런던에서의 짧은 나날들 중에서 가장 춥게 느껴졌던 오늘의 날씨는 밤이 덮여올수록 공기는 더욱 차게,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쳤으며, 강 위에 놓인 타워브릿지에 다가가려고 하자 더욱 모질고 우악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꼴을 한 이 방랑객은 우악스러운 강바람을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갔다.


런던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타워브릿지는 매우 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런던에는 문화와 전통을 간직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타워브릿지 역시 영국 왕실 문화 전통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들과 근대 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과연 랜드마크로서의 자격에 걸맞은 멋진 모습을 한 채 템즈강 위에서 그 매력을 자신 있게 뽐내고 있었다. 사실 멋진 건축물, 아름다운 예술품들은 세상에 정말 많다. 특히 요즘과 같이 양질의 교육을 받은 유능한 예술가들이 많고 그들의 창의성을 뒷받침해 줄 기술 또한 발전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할진대, 그러한 와중에도 런던에서 본 것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전통 및 역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명소에서 영국의 색깔과 영국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자국민에게는 정체성을 느끼도록 해주고 외국인들에게는 그 나라만의 개성을 느끼도록 해준다고 생각한다. 몹시 세련된 첨단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론 늘 아쉽게 여겼던 점은, 우리나라는 전통 보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학창 시절 역사 덕후였던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론 우리나라의 역사 및 문화는 대외적으로도 경쟁력 있을 만큼 우수하고 아름다운 매력을 지녔으니 조금 더 이를 살리고 지키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이 글을 빌어 이야기해 본다.


템즈강 위의 런던 타워 브릿지.


사진 속 얼굴만 봐도 추위에 떨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 런던 타워 브리지 (Tower Bridge) : 1894년에 완공된 이 교량은 산업혁명 이후의 런던의 성장 및 발전된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어 역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 타워브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가동식 다리 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한 고딕 스타일의 고전적인 건축 양식과 근대 산업 시대의 기능성이 결합된 이 교량은 런던이라는 도시가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곳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현재 타워브리지의 색상은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여 리모델링하며 새롭게 채색된 것이며 이 또한 왕실 및 영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색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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