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에 없어도 당황하지 말 것.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카페에서 맡는 커피냄새, 커피기계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다양한 모습으로 유의미하게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감도 얻고 위안도 얻는다.
이런 나의 카페사랑이 독일에 와서 더 커질 줄이야.
사실 노키즈존에 익숙한 나에게 만 2살 아들과 함께 카페데이트를 즐기는 건 언감생시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시내를 방황하다가 마인강 전경이 보이는 테라스 좌석에 홀려 들어간 카페에서 점원이 먼저 나에게 "킨더카푸치노(어린이 카푸치노) 드릴까요?"라고 먼저 물어보기 전까지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고맙다며 시켰는데, 세상에. 진짜 에스프레소잔에 거품 잔뜩 카푸치노를 받았다.
아이도 엄마가 집에서 커피 마시는걸 자주 봐온 터라 본인도 어른처럼 예쁜 커피잔에 무언가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킨더카푸치노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아이와 카페에 간다.
나는 카푸치노와 크루아상, 아이는 킨더카푸치노와 브레쩰을 시키고 모자간 카페타임을 즐긴다.
비록 고요한 커피타임은 몇 분 내로 종료되지만
아이와 함께 카페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간혹 메뉴판에 킨더카푸치노가 보이지 않더라도 점원에게 물어보면 당연하다는 듯 우유거품을 내준다.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높은 확률로 에스프레소잔에 나오면 무료, 일반 카푸치노컵에 나오는 건 1~2유로 내외.
무료로 얻은 날에는 평소보다도 팁을 더 챙겨주고 나온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 카페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사랑 카페타임을 나의 사랑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데 감사한 마음으로.
사실 유럽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킨더카푸치노를 제공해 주는 곳이 많다.
독일 고유의 문화는 아닌 듯.
보통 '베이비치노'라고 하면 통하는데,
킨더카푸치노가 더 입에 붙는 이유는 뭘까?
이젠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나서는 길에 나에게 "엄마 카페 가자"라고 말하는 아들.
나를 닮아 카페의 매력을 알게 된 건지,
입술에 거품 잔뜩 묻혀놓고선 본인도 어른처럼 커피를 마신다는 상상을 하며 카푸치노 한 잔 들이켜곤 행복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이가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오히려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받는 이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다.
어른이 살고 있는 문화에 아이가 자연스럽게 적응해나는 일상의 육아,
내가 독일문화에서 참 좋아하는 부분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일상의 육아가 가능하려면 주변인들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고, 엄마는 더 철저히 아이를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배려받으며 더불어가는 사회에서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를 받아준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이에 감사하며 나 또한 사회에 일조하는 삶,
그게 바로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