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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n 24. 2024

눈망울만큼 신비로운 개체, 고양이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고

 애니메이션의 고전과 같은 '톰 앤 제리'에서 고양이인 '톰'은 영리한 생쥐인 '제리'에게 늘 호되게 당하곤 한다. 우리는 제리가 톰에게 잡히면 안타까워하고 톰이 제리의 꾀에 넘어가면 박장대소를 하며 통쾌해한다. 그렇다. 애니메이션에서만큼은 고양이는 '악역'을 담당하며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다.


  다른 동물에 비해 고양이에 대한 대중의 취향은 분명해 보인다. 반려동물로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개'와 같은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개를 좋아하는 사람,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무서워하는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다면 고양이는 정확하게 두 부류로 나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인간은 기원전 2500년 전 이미 야생 동물들을 가축화했으며 그 이후 새로 생긴 중요한 가축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초의 집고양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기원전 1500년 이전의 이집트 그림이다. 이 또한 추정일 뿐이며 히브리어 성경 속에도 개, 말, 양, 염소, 소, 낙타 등의 가축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고양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원전 6000년 이전의 것으로 추적되는 고양이 턱뼈가 1980년대 발견되기도 했다. 들고양이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키프로스 섬에서 이례적으로 발굴된 고양이 턱뼈는 최소한 인간에 의해 옮겨진 것만은 분명하다.


 고양이는 가축인가 아닌가. 아마도 후자에 가까워 보이는 이 신비로운 개체는 다른 길들여진 동물들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길들여진 소의 야생 선조들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길들여진 개의 선조인 야생 늑대의 수는 15만 마리를 넘지 못한다. 이처럼 사람에게 길들여진 개체는 야생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만 유독 고양이만은 안팎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활보하며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동물을 길들였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동물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을 확률이 높다. 지금의 애완견은 야생에 있는 늑대를 데려와 개로 진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굶주린 야생의 늑대들이 우연히 움집 근처에 있는 인간의 대변을 먹으며 이따금 인간이 먹고 남긴 동물의 뼈 조각을 먹었다. 그들은 어렵게 사냥을 하는 것보다 움집 근처에서 버려진 먹이를 주워 먹으며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야생의 일부 늑대는 인간이 선호하는 귀여운 외모와 온순한 성격인 '개'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학습 프로그래밍을 통해 동물의 지능을 평가하곤 한다. 미묘한 고양이는 탐지견처럼 냄새를 맡고 목표물을 찾아내지 않는다. 그것은 고양이가 못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 결과 우리는 '고양이'보다 '개'가 더 똑똑하다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개에 못지않게 높은 지능을 지녔다. 고양이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사냥꾼이다. 탐색 전략도 목표물도 사전에 계획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무리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복종하거나 인간을 따르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빛나는 큰 눈망울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는 개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다. 고양이의 그 미모는 인간을 홀리게 할 만큼 귀엽고 아름답지만 고양이는 인간의 그 진한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개냥이'라 할지라도 개처럼 오랜 시간 쓰다듬고 앉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없다.


 짐작하건대 우리는 고양이의 '가축화' 과정의 중간 선상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야생의 길고양이들은 여전히 사람을 경계하지만 움집을 떠돌며 수렵채집민의 대변을 먹던 늑대처럼 사람 곁을 배회한다. 모체로부터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길고양이 새끼들은 강아지처럼 사람의 손길을 다정하게 인식하고 이름을 부르면 곧잘 따라오기도 한다.


 만약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선택했다면 문단속을 이전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고양이는 아늑한 집을 좋아하지만 활짝 열린 문을 본다면 언제든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본래 야생성이 깊은 고양이는 안팎을 넘나들며 적응하지만 야생 고양이의 수명은 터무니없이 짧다. 이것은 비단 고양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터전을 잃고 점점 도심으로 내몰리는 야생 동물들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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