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스 Jun 26. 2024

자기 계발에 철학 한 스푼

<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을 읽고

 우리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남 탓'을 하곤 한다. 모닝콜이 울리지 않아서, 집이 멀어서, 버스가 늦게 와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지각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아도 지각을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일부터 지각을 하고 싶지 않다면 버스를 몇 대 놓쳐도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탓'을 해봐야 부정의 기운이 올라와 내면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오늘을 일찍 마무리하고 어제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라. 그리하면 어떠한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아도 여유로운 출근길을 선사할 것이다.


 '남 탓'을 하는 것은 비단 지각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에는 더 큰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노른자 땅 위에 살지 못해서, 흙수저 부모를 만나서, 심지어 헬조선에 태어나 지금의 삶은 잿빛이며 앞으로도 어두울 것이라고 짐작하며 N포 세대로 거듭나는 현실이다. 아무리 팍팍해진 현실이라지만 우리가 다른 부모 아래 태어났다면 또는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현실은 달라졌을까.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연봉처럼 보이지 않는 고지를 바라보는 삶은 현실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현실에 안주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과 그 환경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기만 하면 행복은 현실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금수저도 아니고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도 없지만 매일 행복한 삶을 누린다. 그것의 근원지는 범사에 감사함이다. 아이가 학업 평가에서 50점을 받아왔다면 반이나 알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아이가 독감으로 아파하면 더 아프지 않음에 감사하곤 한다. 더 많은 성과를 내지 못한 나에게 질책하기보다는 집에서 노는 아줌마가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고 혼자 다독인다. 자동차 타이어가 찢어져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2년 전 교체한 타이어를 새롭게 교체하게 되었을 때도 60만 원이라는 엄한 지출이 생겼다고 짜증 내기보다는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음에,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격언처럼 가상의 공간에서 얻는 행복은 모두 거짓일까. 시대는 매일 진화를 말미암아 내일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대중에게 강남 대로변의 롤스로이스 팬텀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물건인 것인가. 모든 것은 사용자의 태도와 그가 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법. 우리는 플랫폼의 사용자이며 소비자다.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 같은 음식 재료로 다른 음식을 선보이듯 취사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바야흐로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자유롭게 정의할 수 있는 시대로 거듭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리히 프롬의 자동인형 같은 군중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들은 마치 보호색처럼 자신과 대중의 같은 신념과 의견에서 평안을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무비판적 사고의 대가는 자아의 상실이다. '나'라는 존재는 곧 '대중'으로 전락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만다.


삶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컴컴한 동굴에서 나와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찾다 보면 분명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퍼스널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인터넷 세계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피드를 채워보라. 5,000만 원을 가진 자보다 5천만 구독자를 가진 자의 삶의 가치가 더 높아진 세상이다. 다름 아닌 자기 PR의 시대인 것이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싸이월드, 노키아, 야후 등을 기억하는가. 한때 명실공히 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그들은 한순간에 몰락하여 그때의 명성을 우리는 추억 속에서나 간직하고 있다. 옴니 채널을 선보이며 산업 군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벅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행 중인 로레알처럼 아날로그를 추구하던 기업들도 디지털 전환기를 맞이했다. 개인이 브랜드가 되고 기업과 같은 영향력을 행세하는 오늘날이다. 시대의 변환기에 그것을 잘 이용하여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자는 그 시대의 위너가 되리라.





가상세계의 행복은 가짜 행복이라기보다 이제껏 인간이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망울만큼 신비로운 개체,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