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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l 17. 2024

자유를 향한 노동의 쳇바퀴

<일 하지 않을 권리>를 읽고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태어난 아기에게 온전한 자유 시간은 1년 내외다. 걷기 시작할 무렵, 따뜻한 가정의 품에서 벗어나 온전한 개체로서 독립의 준비를 한다. 이때 아이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가 정해놓은 순리대로, 남들이 하니까 내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 미숙하지만 기관의 커리큘럼에 따라야 한다. 그림을 더 그리고 싶은 아이는 놀이 시간 종료에 따라 낮잠을 잘 시간이다. 잠이 오지 않아도 잠을 청해야 하며 하고 싶은 놀이는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욕구를 잠재우는 일은 아마도 이때부터 학습되어 왔으리라.


 말문이 트이고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은 어린이집 졸업과 동시에 유치원에 입학한다. 유치원에 졸업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이와 같은 순리는 정해진 교육 과정에 따라 반복된다. 이때 의사 결정은 부모도 아이도 아닌 '국가'에 있다. 때때로 아이는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와 같은 의구심 짙은 질문을 하지만 부모는 '이건 의무 교육이야'라는 답변으로 아이의 궁금증을 묵살시킨다. 공교육을 순탄하게 이수한 아이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 국가의 노동자로 전락한다. 


 현대 사회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쳇바퀴에 기꺼이 올라탄다. 그들은 쳇바퀴에 올라탄 것도 잊은 채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린다. 마치 여기서 내려오면 끝없는 나락이라 여기면서 노동자의 신분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교육 제도는 대량 붕어빵을 앞뒤로 구워내듯 형형색색의 아이들을 무채색으로 키워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연에 가졌던 색들은 호기심, 창의력, 열정, 상상력 등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개성이리라. 12년의 공교육을 마친 성인은 국가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몸이 병들 때까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곧 신앙이었으며 19세기에는 열심히 일하면 사회적 지위를 향상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는 자기실현과 개인 발전 경로의 척도로서 '일하는 것'을 가치화한다. 


 '일하지 않을 권리'는 누구나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 응당 일을 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몫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와 같은 세뇌 교육에 우리는 일하지 않는 어른을 마주할 때면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있거나 마치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색안경을 끼게 된다. 


 주 40시간 근무 제도는 휴일도 없이 일에 매진했던 우리네 부모 세대보다 한 달에 최소 4일 이상의 여가 시간을 선물했다. 그러나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복지 정책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과거 국민은 열심히 일하느라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없었다. 인생을 즐기지 못했으나 그럭저럭 돈은 있는 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돈을 벌기 무섭게 휴일 사용 값을 지불해야 한다. 부쩍 많아진 여가 시간만큼 소비도 늘어난 것. 우리는 본질을 잊은 채 마치 놀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던 노동자들은 여가 시간에 노동의 값을 기꺼이 지불한다. 일하려고 사는가 살기 위해 일하는가. 


 우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배불리 먹는 것, 신분 상승 등이 목표였다면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다수의 목표는 금전적, 시간적 자유이리라. 모든 것은 돈에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과 누리고 싶은 것은 모두 돈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다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일하는 것'이다. 누구나 일하지 않을 자유는 있지만 일에 목메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를 위해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탕과 도피는 문화적 금기가 전혀 아니라 오히려 집요하게 장려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누리려면 일에 더 강하게 매달려야 한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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