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를 읽고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1980년 5월의 광주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 전두환과 하나회 중심으로 일어난 12.12 군사 반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5.18 광주 민주 항쟁하면 전두환 대통령을 떠올리지만 당시 그는 최규하 정부의 보안 사령관이었다. 국민들의 민주 정권 수립 요구는 전두환 보안 사령관 겸 중앙 정보부장의 쿠데타로 수립되지 못했다.
보안 사령부는 야당 인사를 체포 감금하고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 그리고 국회를 점령했다. 1980년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계엄군의 진압은 무차별 살육으로 이어졌다. 공수부대는 아이, 노인, 행인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상했다. 지휘관들의 명령 아래 군인들은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열흘간의 처참한 폭동으로 집계된 사망자는 200여 명이지만 암매장과 실종자 등을 포함한 사망 추정자는 2천여 명에 달한다. 2007년 기준 5.18 피해자 중 사망자 376명 가운데 39명은 자살했다. 잔인한 고문과 치욕스러운 성폭행 등은 남은 삶에도 끈질기게 생존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듯한 통증, 오줌똥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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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 자체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나였습니다.
동호는 고작 열열다섯 살이었다. 동호는 도청 상무관에서 정대와 같은 무고한 죽음을 들여다본다. 같이 일하는 누나와 형들에 비해 - 동호는 시신의 살아있음 적에 나이를 추측하여 기재하는 - 간단한 일을 맡았다. 외할머니 얼굴에서 빠져나온 어린 새처럼 상무관의 많은 어린 새들은 어디로 날아갈까 문득 궁금해진다.
동호의 친구 정대의 몸에서 어린 새가 포르르 날아오른다. 그 순간 학년에서 가장 작은 정대에게 강렬한 힘이 생겨난다. 더 이상 내가 아닌 몸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생각은 멈추지 못했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누나의 혼은 어디에 있을까.
상무관에서 동호와 같이 일하던 은숙 누나는 일곱 대의 뺨과 함께 희곡집이 숯 재가 되었다. 진한 쌍꺼풀과 서글서글한 인상이 좋은 진수 형은 왼손에 매일 반복되는 모나미 볼펜 고문으로 손가락뼈마디가 드러나고 치욕스러운 성폭행의 수감 생활을 감내한다. 무고한 희생이 있었고 남은 생존자들은 출소했다. 형편없이 지급되던 식량과 처참한 고문은 사라졌지만 지난 기억과 그 아픔은 살가죽처럼 떼어낼 수 없었다. 종국에 진수 형의 몸에서도 어린 새가 날아올랐다.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1980년 광주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살아있는 것이 수치였고 매일 반복되는 고문은 모독이었다. 무고한 희생자와 트라우마로 여전히 고통받는 생존자를 활자들이 토닥인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아픔과 가슴이 미어질듯한 분노는 독자를 1980년 광주로 건너가게 한다. 작가의 추모로 역사의 상처를 깨우치고 잊지 못할 상처에 한 번 더 아파해본다.